잔정에 대하여
-- 강세화
잔정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거덜거덜하게 낡은 양말을 버리지 못하듯이
처마 밑에 제비가 날아와 집을 붙이면
어지럽고 사나와도 엔간히 참고
기어이 똥받이를 대 주듯이
뻔뻔한 놈이
미운 짓을 잘난 듯이 우쭐거리고 있어도
부아를 안 드러내고 보아주듯이
잔정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아무도 아끼지 않는 것을 외면하지 못하듯이
화분에 삐죽이 돋은
거슬리는 잡초 한 포기를
간대로 안 뽑고 놓아두듯이
곶감 거죽에 묻은 시설(枾雪)을 보며
마음속에 오래 못 잊는 흰 낯을 떠올리고
부러 알뜰히 털어내지 않듯이
잔정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이에 생겨난 흰 머리카락을
눈을 반짝이며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
'사랑'이라는 말은 '생각하다'에서 나온 거라고 하지요.
결국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늘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 모든 생각이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사람에게서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정'이라는 말은 다른 이를 염려하고 헤아리는 마음이라 하지요.
결국 정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늘 그 사람이 안쓰럽다는 것입니다.
나와 이어가는 인연의 줄이 길어짐에 따라 점점 더해가는 따뜻함의 깊이인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
누군가에게 정을 준다는 일...
이렇게 사전 속에서는 참 쉽게 정리되어지는데
막상 사전에서 꺼내어 내 삶으로 옮겨왔을 때는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주는 일, 정을 나누는 일은 작은 마음 씀씀이에서 시작되는 일인데
한꺼번에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채워버리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조바심을 내게 되고,
그 사람의 마음, 아픔, 기쁨, 행복을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인데
내 마음의 욕심, 소망, 기쁨, 행복만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의 상처나 힘듦을 염려하고 헤아리는 것이 정인데
혹여 내가 그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지진 않을지를 먼저 헤아리게 되니까요.
생각해 볼 일입니다.
진정으로 내 옆의 사람들과 나눌 사랑과 정은 어떤 모습일지를...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조바심과 불안함으로 포장된 값비싼 선물이나 씀씀이인지,
아니면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에 대한 고마움과 작은 정이 담긴 고운 미소일지...
누군가를 미소짓게 하고 마음 벅차게 하는 것은
하늘의 별과 달을 따다 줄 수 있는 정말로 큰 사랑(?)이 아니라
늘 옆에서 씨익 웃어주는 작은 정과 마음입니다.
작은 정을 나누는 하루 되세요...
작은 정을 담아...
아침하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