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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h원로 류달영 님 의 생각
작성자 이관우 조회 998 등록일 200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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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 1999. 7

농학자 류달영 님

이웃을 위해 씨를 뿌리는 사람





농학자로, 농민운동가로, 또 사회교육자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욱 밝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류달영 님(89). 그를 보면 사람이 일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은가 하고 새삼 감탄하게 된다.




“먹고 입는 것만이 사람살이의 전부라면 사람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진정한 인간다움은 무언가를 이루려는 높은 정신세계에 있지요. 그러니 누구나 나름대로 인생관을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살다보면 한평생 잘 살았다는 말을 듣게 되지요.”

나이 아흔을 앞둔 노학자의 말이라서 그럴까. 모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커다란 나무의 뿌리처럼 깊은 정신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대 아끼게나 청춘을 / 이름 없는 들풀로 사라져 버림도 / 영원에 빛날 삶의 광영도 / 젊은 시간의 쓰임새에 달렸거니 / 오늘도 가슴에 큰 뜻을 품고 / 젊은 하루를 뉘우침 없이 살게나.’

자신이 손수 지은 이 시구처럼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1911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열두 살 때 외삼촌의 권유로 신학문을 접하게 되었다. 20킬로미터를 걸어 학교에 가고, 중고등학교에 다닐 적엔 5년 동안 점심을 굶기도 했지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는 류달영 님. 열여덟 살 때 양정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한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김교신 선생님은 기독교의 참 정신과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 민족을 위해 젊은이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어요. 나의 인생관을 세우는 데도 많은 영향을 주셨지요.”

그는 뒤에 스승 김교신과 함께 활동했고, 1942년에는 <성서조선>지에 실린 항일적인 글 때문에 투옥되기도 했다.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그는 서울농대의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에 진학해 농민계몽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민의 90퍼센트가 농민이었지만 대부분이 문맹인 채로 살았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농민이 실력을 길러야겠다, 농민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수원고농을 졸업한 뒤 그는 개성 호수돈여고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여성교육에 힘쓰기도 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광복이 찾아왔지만 다시 전쟁을 맞았다. 대구 피난길에도 <새 역사를 위하여>라는 책을 써서 농촌의 미래에 희망을 불어넣었고, 선진국 덴마크의 모습을 담은 슬라이드 이백여 장을 들고 후미진 섬마을까지 찾아다니며 잘 사는 농촌을 만들자고 외쳤다.

전쟁이 끝난 뒤에 그는 서울농대 교수로 있으면서 잔디와 무궁화 연구에 정열을 쏟았다. 일제 이후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나라꽃을 되살리기 위해 집을 팔아 연구비로 쓰면서 150여 종의 무궁화를 개량했고 우리나라 잔디를 세계에 수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늘 농사를 잘 지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자기 손에 흙을 안 묻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60년대부터 아내와 함께 산비탈을 개간해 포도나무도 심고 딸기도 키웠는데, 그게 수원의 농장입니다.”

그는 실천적인 농학자였다. 또한 보이스카웃, 4H 운동, FAO 기아해방운동 한국위원회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농업기술자협회, 농축수산유통연구원, 유기농업환경연구회 등 열 개 가까운 농민단체를 세웠던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내가 관여했던 단체들은 이제 모두 자리를 잡았어요. 그러니 이제 젊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저는 딴 일을 해야지요.”

그는 8년 전에 개인 재산을 털어 비영리로 운영되는 성천문화재단을 세웠다. 이 재단에서는 동서양 고전을 배워 오늘의 교훈으로 삼는 고전문학 강좌와 미래학 강좌를 개설해 지금껏 꾸준히 운영해 오고 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캄캄해요. 좀더 밝은 사회가 되려면 사회를 이끌어 가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실력을 길러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내 생애 마지막 사업으로 여기면서 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학 총장, 기업체 사장, 공무원, 주부에 이르기까지 약 1천 5백 명 정도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강좌를 들었다.

“힘껏 배우고, 만나고, 사회에 봉사한다. 이 세 가지를 인생의 좌표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인 만큼 우리 사회, 내 나라, 내 민족이 잘 되어야 나도 잘 사는 겁니다. 그건 농사짓는 마음과도 통해요. 내가 머무르는 곳에 성심을 다하면서 서로 돕고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게 진정한 농사꾼의 마음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농사짓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활과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데 보탬이 되도록, 자신은 그저 먼저 씨를 뿌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류달영 님. 세상이 변해도, 청년의 머리가 백발이 되어도 한결같은 신념으로 이웃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그를 보면서 사람살이의 참 의미를 되새겨 본다.

(글 / 조선혜, 사진 /김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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