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기행-셋째 날(땅끝마을, 강진 다산초당)
여느날 보다도 더 일찍이 눈을 떳다. 오늘은 10여년전 산업체 부설고등학교에 재직 시 신입생 모집 차 완도 진도를 누비고 다녔던 곳에 오늘의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일까? 남들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난 샤워을 하고 새벽공기를 마시러 밖에 나왔다.
깨정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순천 청소년 수련소의 아침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수련소에서의 새벽하늘은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동녘하늘의 여명과 잘 다듬어진 정원수와 각종 수련시설이 어울어져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박진규 전국학교4-H지도교사협의회장이 등산을 준비하여 올라오고 있었다. 마침 심심하고 등산이라도 하고픈 생각에 주변을 돌고 있던 차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등산로를 향하여 우기 때나 물이 흐를 듯한 마른 계곡 등산길을 따라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등산을 해본지가 너무나 오랜만인 듯 하여 그간의 바쁜 생활을 뒤집어보면서 숨이 가빠옴에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건강을 소홀히 했구나 생각하면서 정상을 향하여 이름모를 벗섯류의 화사함과 아름다움 저 뒤엔 독이 담겼을 것을 생각하니 씁슬한 기분이 들어 이내 고개를 젖고 저 멀리 지상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새벽안개의 생성과정을 관찰하면서 서서히 태양이 뜨거워짐을 산등성에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며 오늘도 무척이나 덥겠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 내렸다. 단숨에 정상에 오르고 등줄기와 앞가슴에 땀으로 옷이 적셔있을 때는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해는 벌써 많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함께 한 선생님과 70년대의 서울에서의 생활에 옛날 이야기로 담소를 나누며 하산을 하니 벌써 아침식사를 하고자 줄을 서고 있었다.
우리 A팀은 8시에 수련소를 출발하여 순천 강변도로를 타고 고가 위를 달리고 보니 순천의 아름다운 도시가 한눈에 보였다. 산들이 적당히 병풍처럼 둘러있고 바다가 있고..."예로부터 벌교에선 주먹자랑말고, 여수에서는 돈 자랑말고, 이곳 순천에선 인물 자랑 말라"라는 말이 전해져오는데 참으로 남도문화의 중심지로서 많은 인물이 났음직하였다. 벌교를 지나 장흥을 지나고 있을 때 가슴이 점점 더 크게 고동치고 있었다. 준비성 없이 출발한 학생은 뒤가 급하다고 동동거리지만 나만이 간직한 이 가로수조차도 낯설지 않은 듯 반가움과 그 옛날의 그리움에 가슴이 저며옴을 느꼈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하나로 이곳 고향을 등지고 멀리 열악한 근로조건과 불편한 생활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향학열로 불태우던 그 시절의 제자들과의 추억이 하나씩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가로수와 펼쳐지는 시골풍경을 뒤로하며 차창에 기대어 하나 둘씩 옛 제자들을 떠 올렸다. 이제는 모두가 한 가정을 떳떳하게 가꾸어 나갈 자랑스런 나의 제자들이기에 가끔 찾아주고 소식을 주는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너희들은 더욱더 잘 살아야된다"며 뜨거워지는 눈가를 훔치면서 시선을 돌렸다.
장흥을 지나고 강진에 당도한 시각은 10시를 넘고 있었다. 거리마다 "청자문화제"를 알리는 현수막과 길가의 아름답게 다듬어진 꽃길도 낯설지가 않았다.
우리일행은 원래 예된 코스라면 강진 다산 초당, 영랑생가, 청자 도요지, 고산유적지(녹우당) 대둔사(대흥사), 땅끝마을로 해서 일정을 마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제의 B팀의 일정이 너무 빡빡하고 늦은 귀가시간으로 해서 일정을 바꾸어 땅끝마을부터 가고 다산 초당을 거쳐서 영랑생가와 녹우당을 탐방하기로 했다고 아침 출발 전에 일정변경소식을 들었던 차다.
그런데 차량은 영랑공원을 지나 해남옥천을 거쳐서 화산면을 가고 있었다. 그 때만해도 아마 일정 중에 두륜산에 있는 대둔사(옛날엔 대흥사로 널리 알려졌음)에 먼저 탐방코스를 고쳐 잡았나보다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1호차량이 길가에 서서 행인에게 뭔가 물어보는 것이 아마 길을 묻는 것처럼 보였다. 난 내려가서 확인을 해보았는데 땅끝 마을을 1호차 기사가 길을 모른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토말을 가기 위해선 아까 지난 강진에서 완도쪽으로 가다가 해남 남창에서 우회전으로 해서 가는 길이 제일 빠른데, 그럼 다른 곳을 들르기 위함이 아닌 이 바쁜 시각에 1시간을 길가에서 허비했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달리 어찌할 수가 있겠는가? 차는 운전기사 맘인 걸, 헐~
우리 일행은 현산을 지나 송지해수욕장을 지나고 땅끝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12시가 조금 지나있었다. 도시락이 도착을 안하여 일행은 예전에 없던 전망대의 탑루에 올라 다도해의 장관을 보려했지만 워낙 날이 뜨거워 안개가 자욱이 피어올라 보길도, 노화도, 진도 등이 산봉우리만 보일뿐이고 흐멀건한 안개만이 눈앞에 펼쳐있었다. 저곳이 내가 그 옛날 보길도 섬에 들어갔다가 태풍주의보에 여객선이 안뜰 때 목숨을 내걸고 사선을 타고 나온 노화도란 곳인데.....
안개가 더욱더 많이 지펴 올랐다. 아마도 지상의 온도와 해수면의 온도차이로 인한 안개이리라. 점심 도시락이 도착하였다는 무선전파에 서둘러 내려와서 식사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하산한 나는 맨나중에 식사를 하였는데 벌써 학생들은 식사를 마치고 뜨거운 태양열에 차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내 먼저 내려와 땅 끝을 알리는 토말비에 인도하여 설명도 해주고 기념 촬영도 해주어야 했는데 한나절 내내 달려와서 해상국립공원인 다도해의 안개만 구경하고와서 점심을 들고 승차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갈 길이 먼 그 와중에도 이번 문화탐방의 책임지도자인 한국4-H본부 강선태과장님과 지도교사선생님들은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여 차곡차곡 쌓아놓고 땀을 뻘뻘흘리고 있었다. 참으로 요즘 학생들은 대단하다. 나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꿈쩍도 않는다. 내 학교에서라면 벌써 아이들에게 욕설을 몇 번이고 하고도 남았을 텐데 하며 씁씁이 160여명의 도시락을 일일이 음식물찌꺼기와 쓸 것과 버릴 것을 분리하여 수거를 하고나니 그시간도 일정에 비추어 만만치 않았다. 아마도 내 일찍 내려왔음 난 학생들과 토말비와 바닷물을 느끼러 진짜 땅끝으로 갈 생각만 했을 터인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 이곳 지리를 아는 체에 1호차로 승차하여 안내를 하라는 말에 씁슬함으로 안내를 하여 강진 다산초당으로 향하였다. 토말에서 해안선을 따라 완도방향으로 출발한 시간은 오후 1시 40분을 넘고 있었다. 남창을 지나 강진방향으로 달리는 창밖에 풍경은 햇쌀이 따가운 가을풍경이었다. 길가의 코스모스가 해풍에 하늘거리며 오색을 자랑하며 철 이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처음 남도문화탐방일정에 윤선도 유적지탐방이 있기에 내 얼마나 가슴 설레였던가? 아 !완도 보길도에도 10년만에 다시 가 보게 되는가보다라고. 내 마음과는 달리 차는 완도를 뒷 배경으로 하고 강진을 향하여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다산 기념관에 당도한 시각은 2시 4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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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라고 해야 평소보다도 더 바쁜 일정 때문에 문화탐방시 찍었던 사진도 편집도 못하고 이렇게 연일 행사 일정에 강행군을 하고 있어서 좀처럼 책상머리에 있을 시간이 적네요.
월요일부터는 다른 교육일정이고 또다시 4-H 도농교류일정에 울 학교에서 실시를 하여서 현지답사 및 학생들 매치시킴이 일일이 전화도 해야되는데 교육중이라서 어떻게 준비가 잘 되려나모르겠네요.
이번 도농교류는 서울에 세학교의 학생들이 온다고 했는데 나름데로 준비를 잘 해야 그 님들이 느끼고 배우고 갈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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