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가 아빠밖에 안 찾는데 당신이 손꼽아 기다리던 뱃속의 우리 아가는 우짜요….”
18일 오후 대구 파티마병원 영안실.대구지하철 방화참사로
숨진 장대성(34)지하철공사 중앙로역 상주직원의 시신 앞에서
임신 중인 장씨의 부인 정현조(여·35·공무원)씨는 세 살짜리 딸을 안고 흐느꼈다.
장씨 옆에는 동료 직원 김상만(33)씨의 시체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본래 차량정비공이던 장씨와 김씨는 방화사건이 터진 직후 차량기사로부터
“화재가 났으니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현장으로 내려갔다.
이들은 연기 속에서 허둥대는 승객들을 차례로 대피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자신들의 목숨은 돌보지 못했다.
둘 다 중앙로역 사무실에서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 임명식씨는 “오전 10시30분쯤 장씨가 「기지실로 도망쳤으나
연기 때문에 숨이 막혀 답답하다」고 마지막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영안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장씨의 친척들은 “숨진 장씨가 부인과 맞벌이 부부로, 점심시간에 잠깐 틈을 내서
집에서 딸 얼굴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며
“부인이 임신한 이후 혼자 청소·빨래 집안일을 다하며 너무 좋아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김씨의 노부모는 김씨 얼굴을 확인하고 “아이고, 우리 만아!”하며 통곡했다.
지난달 둘째를 출산한 부인 조면숙씨는 고개를 떨군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아버지 김광수(66)씨는 면사무소 회의에 참석 중 친척들의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을 찾아와 “대체 지하철하고 무슨 원한이 있기에 불을 저질렀능교…”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 당시 마침 중앙로역에 점검차 들렀던 정연준(38) 주임과 최환준(34)씨도
화재를 진압하려다가 유독 가스를 마시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정씨 부인 황선미(34)씨는 “오늘 아침 아이들에게 ‘아빠 오늘 일찍 들어올게’라고
한 출근이 마지막이냐”라며 절규했다.
한 동료는 “틀림없이 이들 4명은 승객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뛰어다녔을 것”
이라며 “법 없이도 산 착한 이들이 저승으로 먼저 가는 게 하늘의 뜻이냐”며 탄식했다.
반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이들도 있었다.
안현기(45·대구지하철 공사 검수과장)씨와 철도청 금호역 권춘섭(45) 역장은
각각 화재가 난 맞은편 열차에 우연히 승객으로 타고 퇴근 중이었다가
화재를 당한 후 침착하게 승객들을 대피케 했다.
이들은 현재 호흡곤란증으로 영남대 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다.
칠흑같은 어둠
숨쉬는것이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유독가스 그리고 뜨거운 불길...
그속에서 주부 김인옥(30)씨는 남편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줘요..."
라고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방금전까지만해도 6살과 4살짜리 두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면서
"오늘 빨리 퇴근해서 같이 저녁먹자" 라는 전화를 받은 남편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몇분의 침묵이 흐른 뒤 "여보 사랑해요. 애들이 보고싶어..."
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습니다.
이제 갓 20살이 된 여대생 이선영양.
이선영 양은 어머니의 "정신차리고 살아있어야 돼" 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울먹이며 "숨이 막혀 더이상 통화못하겠어. 엄마 사랑해..."
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습니다.
지난해 결혼한 새댁 민심은씨(26) 역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오빠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라는 말만을 남겼습니다.
"아빠 뜨거워 죽겠어요"라며 숨가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구조를 요청했던 여고생...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라며 어머니와 마지막 전화통화를 한 30대 남자...
"숨막혀 죽겠어요. 나좀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한 여고생...
핸드폰이란 유용한 기계이긴 하지만 이럴땐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마지막 순간의 애타는 목소리는 가족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악몽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한 구조대원이 희생자를 수습하려 지하철 안에 들어갔을때, 엄마 품에 안겨
새까맣게 타버린 아기를 보았다고 합니다.
우는것 밖에 할 수 없었던 그 조그만 아기가 제발 고통없이
세상을 떠났기를 바라는 마음...
잔인하지만 그렇게라도 바랄 수 밖에 없는 마음...
그게 바로 우리 모두의 마음이 아닌지..
지금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울고 있습니다.
아무도 메꾸어 줄 수 없고
누구에 의해서도 채워질 수 없는
가슴 빈 자리 때문에 홀로 울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통에 낯설지 않는 것이라고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그의 울음이 너무 커서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쓰러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바꾸어 설 수 없고
누구도 대신 갈 수 없는 길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고
뜨거운 돌자갈길을 걸어오며 가슴을 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픔을 이기는 길은 그 아픔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절망을 이기는 길은 그 절망 끝까지 싸워나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도
지금 그들에게는 이 소리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서로 손 잡아주어야 할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먼저 눈물 흘린 사람과
지금 눈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울음소리...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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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현장사진('자작나무'인 정상화씨 동아일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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