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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칠레 농업부문의위기
작성자 정찬희 조회 1440 등록일 200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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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칠레 FTA와 농업부문의 위기 >>

국회 통일외교안보위원회에서 한국과 칠레 사이의 FTA, 즉 자유무역협정이 통과하고 난 뒤 농민 5적이니, 10적이니 하는 말들이 터져나오고, 엎친데 덮친 것처럼 농업의 위기니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극단적인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멍하니 구경해도 좋은 것인지 아니면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인지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들 사람이 얘기를 한다.

반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반대할 것인가 혹은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조금만 생각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내려오게 되면 가장 머리 아픈 일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FTA라고 하는 것이다.

1. WTO와 FTA

WTO 체계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사실 WTO는 GATT 체계에 일종의 compliance body라고 할 수 있는 분쟁 소송절차를 더한 것에 불과하다. 이 소송절차를 집어넣으면서 흔히 우르구아이 라운드라고 하는 특별한 협상을 진행하였는데, 이 UR에서 사람들 골아프게 만든 조건이 농업이나 기타 시장에 대한 특별 대우를 없앤 것과 함께 관세를 없애는 절차에 대해서 논의하기로 길을 열어놓았다.

이 관세를 없애는, 그야말로 무관세 상태로 세계경제가 가는 것을 EL, Economic Liberalization이라고 한다. EU나 NAFTA에 비해서 힘이 없는 APEC이 세계 경제에서 힘을 쓰기 위해서 95년 경부터 들여온 협상이 바로 EL이다. 당근 미국이 여기에서 관세 없애자구 생난리쳤지만, APEC은 회원국끼리 서로 도움받기 위해서 만든 기구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런 선도적인 무관세지역을 만드는게 될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WTO의 일반협정에 의한 무관세지역을 만드는 것이 지연되면서 등장한 것이 FTA라고, 자유 무역협정이라는 것이다.

현재 약 8% 정도로 부과되는 최혜국 - 혹은 WTO 회원국 - 사이의 일반관세를 특정 국가들끼리의 조약으로 아예 없애버리자는 발상인데, EU 같은 걸 대상으로 생각하면 딱이다.

EU 국가끼리의 통합을 보면서 아시아 국가들도 ASEAN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구상수준이지만 동북아시아 연합이니 하는 것들이 전부 이 FRA의 연장선 속에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가 FTA를 하나도 맺지 못하고 고립되고 있다고 난리들을 치지만, 이건 좀 과장된 특면이 있다. 특히 칠레와의 경우가 그렇다. 좀 어려운 문제지만 네슬레를 우리나라에 진출시킨 스위스도 우리나라와 FTA를 맺고 시펑한다. 배경은 영세중립국을 선언한 스위스는 EU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므로, 이러한 양자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2. 칠레와의 FTA는 무엇이 문제인가?

칠레와의 FTA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면 어차피 우리나라는 산업국이라 농업은 버려야 하는 부문이므로, 이것 때문에 국가의 발전을 저당잡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업 부문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어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칠레 산업과 우리나라 산업이 무관세로 하게 되고, 칠레 농업 부문과 우리나라 농업 부문이 무관세로 교역을 하게 되는 셈인데, 농업이 죽는다고 하는 건 무슨 얘기일까?

그건 칠레 농업이 바로 미국 농업기업의 앞마당이기 때문이다. 쉽게 표현하면 미국의 농업자본이 플렌테이션으로 가지고 있는게 칠레 농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자가농과 세계 최고의 대규모 미국농업이 경쟁하게 되는 셈이다.

당근 쌈 안된다.

여기에도 약간의 유례가 있다. 미국의 농업이 지금과 같은 대규모 기업농으로 자리를 잡은 데에는 1929년의 대규모 공황으로부터 시작한다. 어차피 뉴딜이나 이런 걸로 돈을 쫙 풀어서 농업을 현대식으로 개편하겠다는 미국은 PL 501이라고 하는, 소위 Public Law, 즉 공법 501조라는 원조법 같은 걸 들이대면서 그야말로 자본주의식 농업 개편을 시도한다.

PL 501에 의거해서 우리나라도 6.25 이후에 우유나 밀가루 같은 걸 받아본 바가 있다.

미국의 공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뭔가 성경에 손을 얹고 '세계평화'에 대해서 선서하거나, 공익이니 민주주의니 그런 말들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의 모든 농산물과 여기에 들어가는 미국 정부의 돈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천명이 PL 501의 1조에서 천명한 법정신이다.

잉여가 생기면 원조로 내보내고, 경우에 따라서 외교적으로 원조를 주지 않는게 도움이 되면 정부 수매로 전량 바다에 폐기처분하는 등의 공격적이고 전략적인 정부 지원금을 통해서 저세계의 농민들이 치를 떨어 마지않는 미국의 기업농이 형성되어 간다. 여기로부터 그나마 약간 자유로운 나라는 프랑스의 밀, 태국의 쌀, 그리고 호주의 소고기 축산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도 WTO 협상 한 번 들어가면 코피 흘리고, 눈물 흘린다.

말이 나온김에 정리하면, 우리나라에 벼농사에 눈물 흘리게 하는 캘리포니아 산 쟈포니아 생산이 시작된 80년대의 경우도 이런 기업농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자기네들은 먹지도 않는 쌀을 대량으로 생산한 것은 전적으로 일본과 한국을 노리고 시작한 것이다.

국제시세의 4배니 5배니 하는 얘기가 한 편으로는 다 허당인게, 미국은 우리나라보다는 싸지만, 소위 태국이 지배하고 있는 바티바 계열의 쌀과는 전혀 다른 자포니아를 재배한다. 3모작이니 4모작이니 하는 태국이나 베트남과는 아예 경쟁이 되지 않지만, 이보다는 비싼 가격에 형성되고 물량도 적어서 - 우리나라와 일본의 쌀소비는 세계적인 거래에 비하면 무시할 정도로 작다 - 선물시장이나 자유거래가 되지 않는 쟈포니아 시장에 전략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대형 곡물자본이 캘리포니아로 진출한 것이 90년대 이후의 WTO에서 우리 농민들이 눈물을 흘리게 된 셈이다.

칠레와의 FTA에는 이런 곡물 및 가공 자본이 칠레를 경유해서 우리나라로 직접 들어온다는 얘기이다.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과 같은 조건이 형성된 과정에서 미국에서도 이 Merchant라고 불리는 대규모 곡물상들이 미국 내부의 Farmer 즉 자영농을 흡수하는 사회적·경제적 재편 과정이 재편과정이 들어가 있다. 소규모 자영농의 몰락을 보고 싶으면, 제임스 딘의 자이언츠 같은 영화를 봐도 되고, 아니면 에덴의 동산을 봐도 된다. 2차 대전을 둘러싸고 미국내 재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이런 과정이 미국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70년대를 전후해서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 전역에서 벌어졌다. 거기에 80년대 이후 dollarization이라고 하는 일종의 중남미 화폐 절하과 맞물리면서, 그야말로 대부분의 노예와 비슷한 상태로 소위 Farmer들이 몰락이 이루어졌다.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을 보고 시카고 보이즈라고 남미 학자들이 치를 떠는 것도 바로 이 때 일이다.

미국 본토에서 남미로 이어진 미국 곡물자본의 외연확대가 한국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지금 농민들이 죽겠다고 하는 거다.

3. 정부는 대책이 있는가?

물론 없다.

일본은 좀 낫다. 우리보다 훨씬 전에 소농 고부가가치를 통해서 일종의 틈새 시장을 만드는데 성공을 한 셈인데, 이 일본의 성공도 영원히 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장이 없다.

우리나라는 약간 틀을 바꿔서 소농, 즉 Farmer 정책 보다는 기업농 모델을 채택하려고 하는게 지금 흐름이다.

쉽게 얘기하면 6ha를 가진 단위 농업 형태로 체계를 전환하려고 하는데, 이 속에서 개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농사 그만 좀 지으세요, 저희가 돈 좀 물어드릴테니까요...

여기에 대해서 '키우면 손해도 커진다'라는 구호를 농민들이 내걸었다. 이말도 옳은 얘기다.

어차피 대규모 기업농 형태로 이전해봐야 6헥타 만큼 손해보는 비율이 높아진다. 그러니까 세계 농업시장은 미국-프랑스와 나머지 소규모 자가농으로 재편되는 중이고, 여기에서 틈새 시장을 찾아내거나 특화 구도를 찾아내지 못하면, 망하는건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대책? 아무 것도 없다.

4. 왜 이렇게 칠레와의 FTA를 서두르는가?

칠레라는 나라는 남미에서 또한 신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남미에서는 가장 서구화되고 개방화된 나라라고 보면 된다.

'칠레에서 통하면 남미 어디에서나 통한다.'

제품개발하는 사람들에게서 칠레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보다는 규모로는 비교할 수 없게 작은 시장이라도 일종의 남미의 대표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신화가 되어서 칠레부터 공약을 하라는 말이 10여년 전부터 유행했다.

그렇지만 곰곰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칠레가 우리나라의 공산품과 직접 관련되어 있느냐라고 보면 약간은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몇 년전까지만 의류시장과 가죽 시장에서 칠레가 우리나라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는데, 지금은 이미 이런 수출선은 중국으로 넘어간 상태이고, 핸펀과 네트워크 산업을 중심으로 한 IT가 칠레와의 중요 교역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태이다. 여기에 부가적인 걸 추가한다면 자동차 산업 정도가 칠레와의 연결 속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IT 산업은 꼭 FTA를 체결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자동차 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재경부를 가득채우고 있는 우리나라의 시카고 보이즈의 주장을 십 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칠레와의 당장 FTA를 체결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소규모 영농의 기반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국민경제에 도움을 주는지는 좀 챙겨서 살펴볼만한 일이다.

물론 이러한 비교는 기계적으로 할 것은 아니고, 각 산업의 발전단계나 개발전략 같은 것과 연계시켜서 들여다 볼 일이다.

그러나 칠레와의 FTA에 대해서 제대로 된 분석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그냥 도움이 된다거나와 교역량에 대해서 기계적으로 외삽을 해서 수출이 이렇게 늘꺼거덜랑요 수준의 더하기와 곱셈 이상의 계산은 한 적이 없다고 보면 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FTA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정부정책결정자의 환상과 함께 우리나라만 '따' 된다는 소위 '왕따' 이론이다.

어차피 살아남기 어려운 우리나라 농업을 위해서 우리나라 전체가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될 수는 없다는, 그야말로 FTA 대세론이 현재의 조급증의 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고민스러운 것은 현재의 추세를 역전할만한 아무런 내재적인 대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칠레와의 FTA는 이미 우리나라 농업 정도에 비해서는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과의 FTA - 그래서 일본은 의례적으로 하는 FTA 하나 정도를 더한다는 것 정도로 협상에 임하고 있으며, 칠레와의 FTA에 목숨 건 통상교섭본부의 얼라 같은 외교와 맞물려, 완전 손해보는 장사를 일본과도 할려고 하는 중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일련의 조급한 FTA로 우리나라는 몇 개 했구요, 저희가 이렇게 많이 했구여, 이런 실적주의 행정을 할려고 하는데,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게 아직은 소규모 가족농 형태로 되어있는 우리나라 농업인 셈이다.

조금 생각하고 차분하게 들여다보자고 하면, 이미 공격적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고 믿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들은 척도 안 하는 것이 딱 작금의 현실이라고 보면 된다.

더도 들도 아니고, 이게 딱 현실이다.

5. 한-칠레 FTA 서두를 것 없다

서두른 협상과 서두른 절차가 만든 부작용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차피 WTO라는 파고를 맞아서 하나씩 문제를 잡고 풀어야 하는 이 상황에서 WTO의 속도를 엄청나게 오바하는 한칠 FTA는 문제를 차분하게 풀고 나름대로 주권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시킨다.

종합적으로 문제를 봐야한다는 건 말 뿐이고, 실제 WTO에 대한 뉴라운드에서 동북아중심국가까지 차분하게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지금 상태로 농업의 기반이 무너지면, 국내 농업의 일부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국내 유기농이나 생태농과 같은 소규모 자영을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틈새시장을 겨냥한 지속가능한 농업의 자그마한 기반 마저도 사라지는 일이다.

농업을 산업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구성의 중요한 축으로 볼 것인가도 충분히 생각해봐야 하는 의제이지만, 이런 것도 고민스럽게 논의된 적은 별로 없다.

다만 우리나라는 산업화로 나아가야 하는데, 농업 때문에 온 나라가 걸림돌 속에 빠져서 혹은 국민소득 만 불의 덫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수는 없다는, 조급한 개발주의적 시각에 대한 일방적 홍보 외에는 벌어진 적이 없다.

과연 한-칠레 FTA, 지금 상태로 지금 이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최선의 대안일까?

국회에 던져진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의 존경하옵는 의원님들께서는, 그렇게 복잡한 건 나한테 물어보지 말라고, 정부 원안 그대로, '자, 통과하시고'라는 의사결정을 내렸다.

그게 지금 우리의 농부들이 불만인 것이다.

한-칠레 FTA 서두를 것 없다. 정 체결 숫자 하나를 늘리는 것이 현안이라면 스위스나 싱가폴 같이 서로 보완관계를 낼 수 있는 나라들과의 협상을 조금 당기면 된다.

문제는 그냥 밀어붙이는 행정과 함께 도저히 답을 같이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국제주의적 개발주의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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