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5 격주간 제825호>
[기고문] 50년 만에 다시 울리는 ‘4-H 신문고’

이 강 실 (창원시4-H본부 마산지회 부회장)

나의 4-H 50년을 돌이켜 보건대 1966년 고교 2년에 당시 경상남도 마산시 완월동(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큰담, 윗담, 아랫담의 형과 아우들이 완월 4개 구락부를 창립하고, 당해 연도에 12회 시4-H경진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얻게 됐다.
4-H신문의 전신인 소식지에 처음으로 이를 투고하고(66년 12월 20일자) 또한 습작시 ‘농악’편도 같이 편집됐다.
또한 부원들은 단위 구락부에선 거의 드물게 회지를 6~7호까지 계간으로 발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보도원으로서 회지 편집위원을 대표하게 됐다. 회지 편집위원으로서 지근거리에 있는 농촌지도소를 주야로 드나들며 지도원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가며 철필로 작업하며 등사했다. 최근에 서고를 정리하다 제2호로 발간(67.6.3)된 회지 1권을 발견하게 되어 감회가 너무 새로웠고, 4-H구락부 소식지에 편집된 단위 구락부 활동상은 스크랩 되어 있었다.
이러한 활동은 시4-H경진대회 글짓기 부문에서 수상하게 되고 이후 사회생활에서 나를 성장하게끔 하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열여섯 나이의 4-H부원 생활은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보관되어 있는 사진첩상의 1966년 시4-H캠프는 12회로 기록되고 있다. 경남4-H 연혁에 의하면 마산은 1954년 4-H경진대회 다음해부터 1회 야외캠프를 가진 셈이고, 나 또한 12회 도경진대회 때부터 참여한 셈이 된다. 1966년 4-H캠프 때 적십자와 연계하여 초급 응급처치원 자격교육이 있었는데 그 후 새마을금고 회계원(79.12.8) 등 양성교육과 일반교육을 합쳐 70여종의 수료증을 갖게 된다.
오늘날 학생4-H회원들이 텃밭가꾸기활동, 봉사활동 등 다양한 과제활동을 펼치며 동아리 활동사를 모두 기록하고 엮어봄도 하나의 귀감이 됐으면 한다.
나의 4-H활동은 회원 연령 제한(당시 24세)으로 자원지도자가 되어 동네 윗담에 새싹4-H를 창립하게 됐다.
4-H 시작 50주년을 1년 앞두고 다시‘4-H 신문고’를 울리는 나. 50년 전엔 단위 구락부 내용을 투고했으나 이제는 마산지회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경남 제일 도시, 가고파의 고향 마산은 창원, 진해의 3개시가 창원시로 통합되어 전국에서 보기 드문 시·군본부 아래 각 지회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지난해에는 창원시농업학습단체대회가 마산공설운동장 체육관에서 열렸는데 회원들은 합심하여 프로그램의 참여와 수범으로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
마을 앞 4-H표지석은 많이 사라졌고 급격한 도시화로 4-H 생성이 약화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학교4-H회가 활성화되어 탄탄한 지회 기금조성을 바탕으로 30여 회원은 학교4-H회에 연 2회 장학금을 지급해 학생회원들이 봉사활동 등 다양한 과제활동을 전개하는 토대를 마련해 4-H회 부흥이 고조되고 있다.
나에게는 50여년 전 직·간접적으로 스승이었던 이태순 전 소장과 이희율 전 소장, 한금선 전 시여성회관장, 최낙기 전 지도사, 김용문 전 지도사 등 스승과 4-H 제자들이 함께 본부 지회의 회원으로 손에 손을 잡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 4-H활동을 할 때 명함이 참으로 많은 것이 고맙게 생각하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 마산지회의 부회장이며 기금총괄관리자, 창원시4-H본부의 이사와 도대의원 등 봉사하며 영원히 빛나는 4-H 이름표가 되리라!
끝으로 경남4-H본부에 처음 참여하게 된 계기는 전 회장 조노제 선배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글을 맺는다.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이 달의 시] 수술실 앞에서
다음기사   [한국4-H본부 정기총회] 4-H조직역량 강화 위한 목표·비전·방향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