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1 격주간 제816호>
[시 론] 불편해야 다 잘 산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잘 산다는 것은 딴 생명체에게 해를 많이 끼친다는 뜻이다"

백 우 선 (시인, 아동문학가)

사람들이 점점 점이 되어 간다. 핵가족 성원끼리도 단절된다. 식구라고도 하는 가족의 식사도 각자 자기 일정에 따라 자기 입맛대로 혼자 먹는 일이 잦다.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렵지만 모여 있어도 저마다 자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제대로 어울려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 청소년들은 이런 경향이 더 심하다. 아예 어울릴 생각을 하지 않거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숫자가 늘어가는 듯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접속은 많아졌으나 접촉을 통한 진정한 유대 관계 형성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함께 따로인 것이다. 겉으로는 함께하느라 바빠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로따로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런 소통의 부재는 자폐나 무기력증에 빠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가족이나 동아리 단위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공동체 활동 중에서도 채소를 파종하고 가꾸고 걷어 들이기와 같은, 생명체와 함께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감동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고 생명 간의 연결과 순환의 원리를 느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주말농장, 옥상텃밭, 학교나 주거지의 자투리 텃밭을 가꿔 볼 수도 있고, 한국4-H본부가 펼치는 벼화분재배와 같은 화분텃밭도 비교적 손쉽게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학교4-H회에서 희귀 야생화를 길러 청계천 광장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도 둘러본 적이 있다.
도시 거주자로서 농경 체험이 없는 사람들은 밥이 어떻게 우리 밥상에 오르는가를 잘 알지 못할 수밖에 없다. 달걀을 보면 병아리를 생각하기보다는 달걀프라이만을 생각하게 되고, 닭 ·돼지·소를 말하면 으레 통닭·돼지갈비·쇠고기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 생명체들에 대한 존중이나 감사나 미안함을 느낄 사고의 바탕이 없는 것이다. 그만큼 생명의 신비에 맹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육식의 증가는 생태계 파괴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소가 방귀로 배출하는 메탄가스가 오존층 파괴를 가속시키고, 사람이 바로 먹을 수 있는 많은 양의 곡물을 먹인 소에게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은 곡물 양에 비해 아주 소량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날 가장 근본적이고 위협적인 문제는 기후변화일 것이다. 지금 당장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댐과 저수지가 말라붙어 갈라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머잖아 슈퍼 엘리뇨가 닥쳐 와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도 들린다. 산업화에만 눈이 멀어 자연과 생명에 대한 홀대와 무시를 자행해온 자업자득의 결과이다.
온갖 생명체들의 삶의 터전인 자연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작은 것 하나라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실천은 고통 받고 사라져 가는 생명체들에 관한 공감의 행동화일 것이다.
승용차 없이 살아가는 이도 있고, 물의 오염을 줄이기 위해 머리 감고 몸을 씻을 때에도 비누를 쓰지 않는 이도 있다. 머리를 말릴 때에도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물 절약을 위해 소변을 두세 번 본 뒤에 물을 내리고 샤워 횟수를 줄였다는 이도 있다. 음식 쓰레기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며, 일회용품의 사용을 자제하고, 과대 포장 상품을 사지 않는 이도 있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사용하며, 종이가방 등을 오래 아껴 쓰는 이도 있다. 광고 전단지 등을 이용해서 우편봉투를 만들거나 관제엽서에 필요한 그림을 오려 붙여 멋진 그림엽서로 재탄생시키는 이도 있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잘 산다는 것은 실은 딴 생명체에게 해를 많이 끼친다는 뜻이다. 소위 크고 좋은 승용차를 소유하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작은 차에 비해 많은 양의 배출가스가 대기를 그만큼 더 오염시켜 생명체들에게 더 많은 폐해를 안겨 주기 때문이다. 못 사는 사람에 비해 잘 살면 잘 살수록 소비는 늘어나게 되고 소비가 많아질수록 생태계에 주는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동학의 ‘사람이 하늘이다’에서 ‘만물이 하늘이다’로 더 나아간 생활을 실천하고, 자발적인 불편과 가난 실천에 기꺼이 동참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사람을 비롯해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삶은 그만큼 더 건강해질 것이다. 사람이며 생명붙이들과의 직접 접촉이 불편하고 힘든 점도 있겠지만 그 이상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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