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1 격주간 제800호>
[시 론] 농사, 창의성, 청소년 그리고 4-H

"최근 들어 청소년에게 지식정보사회의 핵심 사고라며 창의성을 강조한다"

노 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원장)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다.
전통적으로 농업을 중심으로 살아온 우리 선조들도 농사를 중히 여기며 삶의 근간으로 생각해왔다. 잘 생각해보면 농사는 인간의 삶 그 자체와 닮아서 어느 시대에서도 그 중요함은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
농사를 짓다 보면 씨앗에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정확한 순서와 과정이 이루어지면서 정직한 노력의 대가를 내놓는다. 쌀 한 톨을 얻기 위해서 여든여덟 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열매 하나에는 그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농사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이면서 우리 삶의 기본인 이유다.
최근 들어 청소년에게 지식정보사회의 핵심 사고라며 창의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과거부터 이어온 오래된 농사에서 우리는 미래의 사고방식으로서 강조되는 창의성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사실 창의성은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사회와 공동체의 미래 행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고 역량이다.
창의성은 어디서 올까? 가만히 앉아서 공상만 한다고 창의성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창의성의‘창(創)’은 창고에 칼을 찔러 무엇인가를 터지게 하는 것이다. 창의성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공상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 지식과 다른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이는 마치 자그마한 씨앗을 뿌린 후에 정성을 들여서 열매를 거두는 농사의 과정과도 같다. 더구나 농사라는 행위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를 잘 고찰해보면, 청소년의 창의성과 그 함양 과정에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제공할 수 있다. 농사 과정에 담긴 의미를 창의성과 연결하여 살펴보자.
첫째, 농사는 생명을 존중하고 키우는 일이기에 생명의 존엄함을 익힐 수 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청소년들 중에 어떤 일을 행하고 그 결과의 중요성만 알지 그 결과가 생명의 소중함과 연결되어야 함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들이 직접 농사를 경험하게 되면 씨앗 하나가 만들어 내는 생명 하나하나의 존엄함과 성장해가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농작물 수확을 위해 들이는 매 순간의 노동의 절차와 정성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때로 창의성은 마치 순간의 번뜩임에서 출발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루아침에 창의적인 결과물이 불현듯 나타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무의식과 의식 속에서 움직여 왔던 생각의 편린이 만들어낸 결과다.
창의성의 결과물은 바로 긴 시간 공을 들여서 얻는 농작물의 열매와 같다. 그러므로 창의성에는 농사와 마찬가지로 긴 시간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농사를 통해 청소년들은 기초의 중요성을 깨우칠 수 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농사는 좋은 씨앗을 고르고 적절한 성장 환경을 만드는 기초 작업에 공을 들인다.
그 무엇보다 기초 작업을 강조하는 농사 체험을 통해, 청소년들은 창의성의 순간적인 발현을 위해서는 관련한 기초 지식을 아는 것이 필수적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넷째, 농사는 공업과 달리 정해진 공정에 따라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조화를 고려하여 생산물이 나오는 도전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청소년들이 창의성에 부수되는 도전성을 익히게 해줄 것이다.
하나의 씨앗에 정확한 농사 지식을 적용하고 많은 땀방울을 흘렸다고 해도 신통치 않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농사를 짓는 이는 그 지점에서 포기하지 않는다. 창의성도 마찬가지다. 그 끝이 언제인지 몰라도 실패 또한 결과물을 얻는 과정이다. 결국 농사 활동은 청소년들에게 창의성을 발현하는 과정에서의 실패 경험과 그를 딛고 다시 일어나야 하는 도전 정신이 필수적임을 알게 해줄 것이다.
창의성을 가진 청소년은 스스로, 그리고 미래의 사회도 행복하게 할 것이다. 우리 4-H청소년들이 그 행복을 만들어 가는 중심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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