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규 한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
"4-H운동은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청소년운동이다"
고향 추억 속 아련한 모습 중 하나는 마을 어귀를 지키던 4-H회 돌비석이다.
녹색 네잎클로버 모양의 문양을 담은 이 비석은 그 마을 청년들의 활력과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물과도 같았다.
당시 4-H운동을 통하여 구습이 타파되고, 정온하던 전통적 마을이 활기찬 근대적 모습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모여 마을 일을 상의하고 어른들을 설득하여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4-H운동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공동체가 붕괴되고 도덕적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 미국이 새로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전개한 청년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재건하려는 나라들과 식민지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신생 독립국들을 통하여 세계로 확산됐다. 4-H운동은 세계 수많은 나라들에서 20세기 산업사회의 번영을 이룩한 주요한 원동력이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4-H운동은 더 이상의 유용성을 상실한 구시대의 유산인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1960년대 한국의 4-H운동은 단순한 농촌부흥운동이 아니라 새 시대를 열어가는 청년운동이었다. 정보사회를 열어가는 글로벌 시대에 4-H운동은 또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주요한 동력이 돼야 한다.
4-H이념, 정보사회에서 더 중요
지(Head), 덕(Heart), 노(Hands), 체(Health)의 4-H이념은 산업사회보다 정보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가치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지(Head)는 정보사회의 핵심코드다. 지식, 지혜, 창의력, 상상력 등이야 말로 정보사회 생산력의 근원이다.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내거나 학습하고 전파하는 일은 바로 청소년들의 몫이며, 그러므로 청소년은 미래 정보사회의 주역이다. 4-H운동을 통하여 청소년의 잠재능력을 계발하고,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핵심과제일 것이다.
덕(Heart)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올바른 인간관계를 위한 덕목이다. 글로벌 시대에 서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공생하며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온 인간존중, 나아가 생명존중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 서로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과 남을 포용하는 도량은 청소년 시절의 활동을 통하여 체득될 수 있다.
노(Hands)가 상징하는 근면과 성실은 시대를 넘어 어느 사회에서나 소중하고 올바른 삶의 자세다. 특히 조직보다 개인, 타율보다 자율, 표준화된 지식보다 삶의 지혜가 중시되는 정보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청소년들에게 근면과 성실을 전하는 일은 공식적인 학교 교육보다 다양한 수련활동이나 자원봉사를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체(Health)는 건강한 삶의 질을 의미하는 것이다. 산업사회에서는 공부와 일과 놀이가 별개의 것인 양 삶의 단계마다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보사회에서는 이들이 모든 삶의 단계에서 함께 중층적으로 이루어진다. 즐겁게 공부하고, 신나게 일하며, 단계 단계에서 인생을 즐기는 삶의 양식을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이 지·덕·노·체의 가치를 가꾸고 실천하며, 이러한 정신을 사회적으로 확산하여 공유케 할 수 있다면, 선진조국의 미래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올 것이다.
4-H운동은 과거 산업사회의 지역공동체 운동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청소년운동이다. 지·덕·노·체의 정신 함양을 통하여 청소년들을 정보사회의 개척자, 네트워크사회의 첨병, 글로벌시대의 개척자, 고령사회의 동력으로 가꾸어 나가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 4-H운동의 새로운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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