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현 철 (전남4-H연합회 차석부회장)
“4-H선배들이 먼저 다가와 갈등 해소와 농업지식을 채워주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4-H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나 또한 2008년까지는 단순한 봉사단체로만 생각했었다.
‘저런 거 해서 뭐하지, 뭐 주나?’하는 정말 어린애 같은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하면서 나의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그냥 봉사만 하는 단체가 아닌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단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졸업 후 나는 고향인 전남 영암으로 내려와 영농에 첫발을 내딛었다.
4-H회원의 자격으로 처음 참여하게 된 행사는‘선진지견학’이었다.
농기계 박람회장을 견학한다는 말을 듣고 “형, 나도 데리고 가!”하며 따라나선 집결지.
그곳엔 고등학생 시절 제일 싫어하던 선배 2명이 있는 것이 아닌가.
“형, 나 저 사람들 있어서 안 갈래!”하며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그 선배 두 명이 “왜 그러냐?”며, “그땐 형들이 철이 없어서 그랬다”고 미안한 마음으로 같이 가자 했다.
학창시절 그렇게 모질고 험하고 말 안 듣던 선배들이 4-H행사와 본인들의 농업경영에 있어서 단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4-H가 사람을 저렇게 달라지게 하나?’속으로 생각할 무렵, 어느새 나는 점차 4-H에 매료되어 가고 있었다.
영암군 역대 모 회장님께서 우스갯소리로 “4-H는 새벽 4시까지 술 먹는 단체다.”라며 모두들 웃던 때가 생각난다.
그땐 정말 새벽 4시까지 술 먹어야 하는 줄 알고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술이 아닌 사회생활과 농업경영 운영방법 및 노하우에 관해 새벽 4시까지 토론하는 선배들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다.
한참 4-H활동에 빠져 있을 무렵 조그만 시련이 찾아왔다. 재미난 4-H활동에 푹 빠져 살다보니 정작 나의 농업에는 소홀해져 있던 것이다. 물론 젊은 농업인이 겪는 부모님과의 갈등도 있었고, 농업지식 부족도 원인이 되어 수입이 급속도로 줄어든 것이다.
그때 나를 다독여 준 건 바로 4-H였다. 4-H선배들이 먼저 다가와 갈등 해소와 농업지식을 채워주었다.
4-H가 아니었다면 지금 난 아마 이름 모를 회사를 다니며 힘든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오늘도 나는 4-H와 농업과 나의 바람을 위하여 하루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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