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현 미 (동아일보사 여성동아 편집장)
"동식물과 인간이 동등한 생명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북아메리카 서해안에는 2000년까지 산다는 시다나무가 자란다. 다 자란 시다나무는 예닐곱 사람이 손을 뻗어야 겨우 감싸 안을 만큼 굵고, 50~60m 이상 곧게 자라며, 독특한 향 때문에 잘 썩지 않아서 이 지역 원주민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이들은 시다나무 줄기로 집 지붕과 벽, 카누, 토템 기둥을 만들고 껍질로는 옷, 바구니, 모자, 밧줄, 행주를 만든다.
시다나무는 할머니에서 딸로, 딸에서 손녀로 이어지는 30세대 이상이 자신의 몸을 이용해 집을 짓고 바구니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봐온 셈이다. 그래서 이 나무에는 ‘생명의 나무’, ‘인간을 장수하게 하는 나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인디언 여인들은 나무껍질을 벗기기 전 나무 정령에게 다음과 같은 기도를 올렸다.
“나무님, 당신이 입고 계신 옷 일부를 제게도 주십시오.” 그리고 나무 둘레의 3분의 1 정도 폭으로 표면을 절개한 뒤 수직으로 짧게 찢어 여러 개의 갈기를 만든 다음 양손으로 껍질을 뜯어냈다. 이때 할머니는 딸이나 손녀에게 만일 욕심을 내서 껍질을 3분의 1 이상 벗기면 주위의 나무들이 증인이 돼 나중에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생태학자로 ‘죽은 나무가 없는 숲은 아름답지 않다’라는 책을 쓴 탁광일 박사다.
탁 박사는 “욕심 내지 말라는 것은 나무의 생장에 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인디언들의 배려이자, 지속 가능하게 자원을 이용하려는 지혜였다”며 “천 년 이상 살아 견디는 경이로운 시다나무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며 살아온 인디언들은 이 나무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와 중국 국경지대에서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는 유목민 어원커(에벤키)족은 곰을 숭배한다. 이들은 곰 사냥을 하면 반드시 풍장의식을 치르고 다음과 같은 노래로 곰을 위로했다고 한다.
“곰 할머니, 당신은 쓰러져 아름다운 잠이 들었군요! 당신의 육체를 먹는 것은 새까만 까마귀랍니다. 우리는 당신의 눈을 경건하게 나무 사이에 올려놓습니다. 마치 신의 등불을 올려놓듯이 말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사냥한 곰 고기를 먹을 때는 일부러 “까악까악” 하고 까마귀 같은 소리를 내는데, 이는 곰의 영혼에게 사람이 곰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까마귀가 먹는다는 것을 알리는 뜻이라고 한다.
자연에 대한 경외와 생명에 대한 배려는 우리 조상들도 이들 못지않았다.
충남 홍성에서 나고 자란 이정록 시인이 전해주는 어릴 적 풍경 하나. 잔치를 준비 중인 할머니께서 두부를 만들고 난 뜨거운 국솥 찌꺼기를 가지고 부엌에서 나오신다. 할머니가 샘가 도랑 옆에 선다. 트위스트 추듯이 뜨거운 물을 버릴까 말까 양팔을 흔드신다.
“훠어이 훠어이. 얼른 비켜라. 뜨건 물 나가신다.” 할머니는 도랑 속 작은 생명들이 다칠까봐 헛손질로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다음 풍경은 보리밭 두둑.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작대기로 알지게를 두드리며 누런 보리 이삭에다 대고 소리친다. “내일 보리 벤다. 참말이여. 내일 새벽부터 보리 베니깐 서둘러라, 잉!” 보리밭에 깃들어 사는 들쥐며 두꺼비며 개구리며 뱀이며 각종 벌레며 새들에게 이사 가라는 것이다(이정록 산문집 ‘시인의 서랍’에서). 시인은 이것을 아름답고 거룩한 풍경이라 했다.
옛 사람들이 나무와 보리 같은 식물이나 쥐, 개구리, 뱀, 각종 벌레, 심지어 곰의 영혼에까지 말을 걸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자연과 접촉을 통해 세상 모든 동식물이 인간과 다르지 않은 생명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탁 박사는 이를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고 했다. 반대로 자연과 접촉이 부족할 때 생기는 것이 ‘바이오포비아(Biophobia)’, 자연공포증이다. 뱀이나 곤충을 보면 무조건 ‘징그럽다’, ‘무섭다’라고 느끼거나 흙은 ‘더럽다’고 여기는 것이다.
낙엽 하나 뒹굴까 비질부터 하는 도심에서, 비온 뒤 꿈틀거리는 지렁이 한 마리 나타나지 않는 시커먼 아스팔트 위에서, 우리는 과연 곰의 영혼에게 노래를 불러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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