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용 정 전라남도4-H본부 사무국장
60년대 초,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월례회의에도 참석하고 마을 입구 돌에 4-H마크를 그린 적이 있다. 당시 그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을 선배들을 따라 네잎다리 클로버를 그린 것이다. 4-H마크를 그릴 때는 녹색페인트와 백색페인트, 휘발유 그리고 붓 등이 필요한데 지금과 같이 재료가 풍부하지 않을 때라 4-H클로버 마크를 그리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지금은 어쩌다 볼 수 있는 4-H안내판이 되었지만 그것이 인연이 되어 필자가 농촌지도직에 입문하고 퇴임 후에도 4-H업무에 종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다.
4-H운동이 다른 청소년운동과 다른 점은 농업·환경·생명의 가치를 창출하고 청년농업인4-H회원의 경우 우리 농업과 농촌사회를 이끌어 갈 전문농업인으로서의 자질을 배양하는 데 있다.
따라서 청소년 교육이 지육, 덕육, 체육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비해, 4-H운동은 노육을 추가하고 현장교육과 실천과제 등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하고 있다.
1947년 시작된 우리나라의 4-H운동은 해방 후 낙후된 농촌의 부흥을 위해 당시 구자옥 경기도지사와 경기도 군정관인 앤더슨 대령이 미국에서 도입했다.
1952년 한국전쟁 중에도 한국4-H본부의 전신인 한국4-H구락부 중앙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전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62년 3월, 농촌진흥청이 발족되면서 정부의 조직적인 지원으로 4-H운동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농어촌의 환경 개선과 농업생산 기반의 정비, 주곡확충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가난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4-H운동은 새마을 운동의 밑바탕이 되었다.
1980~90년대 농촌에 기반을 두었던 4-H운동은 산업화와 인구의 도시이동 등 급격한 변화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도농업기술원, 시군농업기술센터가 학생4-H 자원 확보 등 4-H회 육성을 전담하여 새로운 도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새로운 사회변화에 발맞춰 농업·환경·생명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각종 교육 및 연수활동을 강화했다.
특히 관 주도로 추진되어 오던 4-H가 자조적인 활동을 위해 민간 주도로 바뀌면서 중앙, 도, 시군단위의 4-H본부가 4-H육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전라남도4-H본부는 시·군본부 조직 활성화, 기금조성 확대, 학교4-H 지도교사 확보, 국제 교류사업 전개 등 4대 역점사업을 정해 추진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장차 나라를 짊어지고 갈 내일의 주인공들이다.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우리 청소년들은 국가와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으로 육성하는 일은 나라의 장래와 지역사회 발전에 직결되는 국가적인 기본 과제이며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과제로서 우리 모두에게 맡겨진 책임이다.
우리 전라남도4-H본부에서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4-H회원들이 어려운 농업과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4-H회를 이룬 회원들은 장차 우리 농업을 이끌어갈 대들보요 미래다. 모두들 4-H회에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고 가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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