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01 월간 제753호>
[4-H 지도자 기행문] 인디아로부터의 편린
이 환 〈서울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4-H지도교사〉

서울특별시4-H지도교사협의회 심양식, 박영희, 김규식, 윤명국, 최규진, 유동호, 이환, 송기호 지도교사는 겨울방학 동안 21일간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겨울의 끝자락에 비가 내린다. 건조한 겨울 거리의 먼지를 잠재우는 비는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다. 먼지와 대기의 오염은 지난겨울의 베이징에서 아주 심하게 경험했지만, 이번 인디아에서 겪은 먼지와 오염 등에 비하면 한결 부드러운 편이다.
이번 배낭여행은 서울시4-H지도교사협의회 소속 교사 8명이 참여해 지난 1월 8일부터 20일간 진행됐다.
쓰레기와 오염, 사기와 성폭행 등 인디아에 대한 즐겁지 않은 정보는 출발하기도 전에 우리를 기죽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다양한 신들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인디아에 대한 여행자들의 또 다른 평은 나를 사로잡았다.
인도에 대한 첫 인상은 약간의 무더움과 소란함이었다. 뭄바이 공항에서 택시를 이용해 안데리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다이 뿌루로 가기 위해 다시 반드라 역으로 향했다. 반드라 역으로 걸어가는 길은 참으로 야단스럽고 어수선했다. 골목시장에 적응되지 않은 자욱한 향신료의 냄새와 악취의 절묘한 배합은 숨쉬기가 벅찰 정도였다. 거리는 더했다.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릭샤로 인해 먼지가 자욱했다. 게다가 연신 울려대는 경적과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단횡단하는 사람들. 도로 위를 사람들보다 더 여유 있게 어슬렁거리는 소, 개, 염소들. 길을 묻는 우리들에게 서로 길을 알려주겠다고 몰려드는 친절한 사람들과 구걸하는 어린이들. 한 사람에게 무엇인가 나누어 주면 몰려와서 자기도 달라는, 심지어 길 건너편에 있는 친구의 몫도 챙기려는 사람들. 한 쪽에서는 쓰레기를 버리고 또 한 쪽에서는 쓰레기 더미를 바구니에 담아 트럭에 싣는 사람들. 여기저기에 보이는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에 개의치 않고 방뇨의 기쁨을 즐기는 사람들. 이러한 풍경들이 갑자기 흑백으로 바뀌면서 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유년시절이 떠올랐다. 토담집에서 방바닥에 바를 종이를 구하지 못해 돗자리를 깔고 자던 어린 시절. 하루 한 끼로 겨울을 나면서도 신나게 얼음을 지치던 시절에는 가난이 가난인 줄 몰랐었다.

나마스떼! 내 영혼의 신이 당신의 영혼도 사랑하길!

이런 생각이 들자 열차길 옆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빨래를 하는 여인네들의 손길에서 사람 냄새가 잡혀왔다. 아이들의 속눈썹이 긴 맑은 눈동자가 가을 하늘처럼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외지인의 경계심과 짜증을 쉽게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나마스떼! 작은 탁자에 앉아 있는 주민들에게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건네자 무심한 표정들의 눈가에는 선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리고 환한 표정으로 화답했다. 나마스떼! 그랬다. ‘나를 사랑하는 내 영혼의 신이 당신의 영혼을 또한 사랑하길!’ 참 좋은 인사말이었다.
우다이뿌르에서 12시간을 달린 열차는 아침 6시 30분경에 뉴델리 교외인 니자무딘역에 도착했다. 역의 계단에 잠시 서 있자 인디아인들이 친절을 베풀려고 다가 왔다.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가 하면, 오토릭샤가 있는 곳, 택시 승강장 등등 자신이 생각하는 데로 안내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현지인의 잘못된 정보에 번거로운 상황을 겪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인디아에서는 이런 상황에 화를 내거나 속상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여행을 하면서 보니 인도인들은 여행객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웬만하면 모른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설사 모르고 있는 부분이라도 아주 능청스럽고 자연스럽게 무조건 가르쳐 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어렵게 버스를 이용해서 뉴델리역에 도착했다. 뉴델리역은 인도에 갓 들어온 신참 여행자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호객꾼과 사기꾼의 수가 그 어느 곳보다 많다. 버스에서 내리니 많은 호객꾼들이 몰려들었다. 묻지도 않은 설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디아 사람들은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넓고 좋게 말하면 친절했다.
뉴델리역에서 멀지 않은 빠하르간지는 인도인의 생활상을 비교적 섬세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동네의 골목시장과 인사동을 함께 묶어놓은 느낌이다. 신발가게, 옷가게, 식료품 가게는 물론 장신구,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한데,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곳이어서 그런지 게스트하우스가 유난히 많았다. 이곳의 도로 역시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지만 사람들은 마치 그 소란과 혼란스러움을 초월해 그저 흘러가는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듯했다. 빠하르간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여전히 혼돈의 카오스였다. 그 혼돈 속에서도 빠하르간지에는 시간이 흐르고 날마다 어김없이 새벽이 열리고 사람들은 또다시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영혼의 자유로움을 꿈꿔왔다. 현생의 고단함이 깊을수록 그 꿈에 대한 간절함은 더 절실하다. 주어진 삶의 무게가 참으로 벅차다고 느껴질 때, 신분의 족쇄로 현생에서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펼치지 못할 때 인도인들은 갠지스강을 찾는다고 한다. ‘갠지스강은 인디아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갠지스강은 내게 참으로 호기심의 장소였다.
바라나시 정션 역에서 내려 갠지스강가에 있는 마니까르니까 가뜨로 향했다. 갠지스강 연안에 위치한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7개 성지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바라나시는 비단 힌두교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크교·자이나교·불교 등에서도 성지로 치고 있어서 한층 종교적 특색이 짙다. 연평균 100만에 달하는 순례자가 연중 끊임없이 모여들어 갠지스강에서 목욕재계를 한다고 한다. 그들 순례자를 위하여 갠지스강변에는 길이 약 4 km에 걸쳐 가뜨라는 계단상의 목욕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 한쪽에는 화장장이 있는데 마니까르니까 가뜨의 화장장은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갠지스강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식당 앞의 좁은 골목으로 상여꾼들이 지나간다. 우리의 상여소리와 다르게 상여꾼들이 뭐라고 비슷한 말을 시간을 두고 합창을 하는 듯했다. 상여소리는 ‘라마신은 알고 계신다’라는 의미라 한다. 상여 생김새는 간단했다. 굵은 대나무를 사다리 모양으로 만든 설치물 위에 하얀 천으로 감싼 주검을 얹고 화려한 옷감으로 다시 전체를 덮었는데 8명 정도가 상여를 매고 있었다. 강가로 나가보니 오전을 지난 화장터는 벌써 여기저기에서 장작더미에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강에 방금 도착한 운구는 강물에 담가 씻는다. 그리고 준비된 화장터의 장작더미에 시신을 올렸다. 사제가 상주와 함께 시신의 주변을 뭐라 주문을 외우며 서너 바퀴를 돈 후 불을 붙였다. 사람들은 그저 무심한 눈으로 바라볼 뿐 시신을 보며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하관할 때 이별의 아픔을 참지 못해 울부짖는 우리네 정서로는 이런 광경이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화장터 위쪽에 있는 마니까르니까 가뜨는 화장터의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평온한 풍경이었다. 진지하게 주문을 외는 사람, 빨래하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혹은 강물을 작은 물병에 담는 사람도 있었다.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가트. 그리고 그 공존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인디아 사람들. 인디아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곳이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인디아를 7일 다녀온 사람은 책 한권을 쓰고, 7달 다녀온 사람은 시를 한편 쓰고, 7년을 다녀온 사람은 아무것도 못한다고. 1월 28일에 한국에 도착을 하고 다음날 배탈이 났다. 나의 인디아의 음식이 체질에 한국 음식이 맞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배탈과 몸살로 며칠을 헤맸다. 그 헤맴 속에서 나는 다시 인디아에 대한 시를 준비하고자 했다. 내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주는 인디아 배낭여행. 행복한 21일을 만들어 주신 여러 선생님들에게 다시 감사드린다.
나마스떼! ‘나를 사랑하는 내 영혼의 신이 당신의 영혼 또한 사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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