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 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농촌청소년문화연구소장)
좋은 인연은 인생의 길을 걸으며 은은히 퍼져가는 좋은 향기를 남긴다.
돌아보니 내게는 4-H와의 인연이 그러하다.
나와 4-H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마을 4-H구락부의 서기 활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서기였던 나는 당시 자원지도자선생님으로부터 회의록 작성 훈련을 받았다.
그때 받은 교육의 내용이 오래도록 생생하게 남아, 중학교시절 노트정리에서부터 대학 동아리 활동은 물론 대학 교수 회의록 작성에까지 이어진 생애기술(life-skill)이 되었으니 4-H활동은 내게 매우 감사한 선물을 준 것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중학교 진학 후 ‘농업’과목을 좋아하게 되고 중학교 일학년 때 농대 진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의대 진학 권유를 뿌리치고 결국은 농과대학에 진학하게 된 것도 4-H와의 인연이 그 뿌리가 된 것이니 4-H를 만난 것이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고 감사하다.
1963년 시작된 대학 생활에서 대학4-H연구회 활동은 선배들에게서 농업 농촌 농민 문제를 고민하며 토론을 통해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1964년 여름 달성군 옥포면 강림리로 간 농촌봉사활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며, 피사리와 밭일 외에도 밥 짓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동네 샘물에서 물지게로 물 긷기하며 뾰쪽한 삼각 자갈들이 박혀 있는 길을 맨발로 뛰어다니던 일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봉사 활동에 함께 가신 지도교수님께서는 지금도 만나면 그 때 강하게 받은 인상을 말씀하시곤 한다.
봉사 활동 후에도 대학4-H연구회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야학과 야학연구회, 독농가 연구회, 덴마크-이스라엘 연구회 활동에 농촌 연구 단체들의 연합체인 학생회 농촌연구부 활동 등으로 이어지며 농업 농촌의 발전을 위한 연구와 농민 소득 향상을 위한 고민을 계속하는 한편 ‘혼돈에서 조화로(From Chaos To Cosmos)’의 기치아래 전국에 코스모스 심기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농촌 연구 활동 중에도 ROTC를 겸하여 졸업과 동시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되고 소정의 훈련을 거쳐 15사단 경계초소근무 실습 중에는 무장공비의 공격을 잘 방어하였다고 ‘화무공훈장’을 상신할 테니 장기 복무를 지원하라는 설득과 압력을 받기도 하였다. 마침 입영 전 대학원에 입학 후 군 입대 휴학임을 알리고 장기복무를 고사하는 바람에 훈장은 다른 보병 동기에게 수여되고 나는 ‘참모총장 표창’을 받았음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대성산록 말고개 포병대대 소속 삼천봉 관측소에서 관측 장교로 근무하며 뉴질랜드 수상, 에티오피아 국왕 방문 등에 이어 최우수관측소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육군 중위로 군 복무를 필한 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는 학과 발전을 위한 IDA/IBRD 교육 사업을 위한 교육 시설 개선 작업을 위해 밤새운 적도 많았으며, 석사학위를 마치면서 교육부 교육차관사업부의 컨설턴트 카운트파트(consultant counterpart)일로 계속되기도 하였다. 1975년 미국 미네소타대학 유학 시에는 한인회 사무총장, 한국학교장 일로 주말 없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노인들을 차로 모시고 다니는 기사 역할을 많이 한 덕에 30대 초반의 나이에 노인회의 이사 감투를 쓰기도 하였다.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다음 날부터 한국 교육개발원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모교 교수 공개채용에 응모하여 1981년 발령되기까지엔 1964년 여름 봉사활동에서 대학4-H연구회 지도교수님의 도움이 컸음도 잊히지 않는 행운이었다.
모교 교수로 임용되어 몇 달 지나지 않아 대학4-H연구회의 지도교수를 맡아 학내에 일명 ‘짭새’가 상주하던 시절 ‘농정토론회’를 성황리에 개최한 후 정년퇴임하기까지 근 30년 동안 지도교수로, 졸업생들의 주례로 장수할 수 있었음도 큰 행운이었다.
한국4-H본부 부설 농촌청소년문화연구소와의 인연으로 지도교사연수, 4-H대상 심사, 농촌청소년 백서의 발간, 국제겨울캠프, 아시아4-H네트워크 컨퍼런스에 이르기까지 봉사하며 함께할 수 있었음도 즐거움이자 보람이었다.
이런 나의 인생의 길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맺은 4-H와의 인연과 무관하지 않은데, 좋은 인연으로 지·덕·노·체의 네 향기 속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지금 전국에서 약 7만 여명의 4-H회원들이 4-H와 인연을 맺으며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인연이 고리가 되어 더러는 나와 같이 평생 4-H와 농업·농촌을 벗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여러 분야에서 행복하고 보람된 인생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인생의 길을 걸어가든지 지금 하고 있는 4-H활동이 귀중한 인생의 자산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지·덕·노·체의 네 향기가 내 안에 배어 들 것이고, 인생의 굽이굽이 그 향기가 뿜어 나와 농업과 농촌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품고, 농부의 마음으로 정직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초·중·고·대학생 4-H후배 여러분, 그리고 땀 흘리며 우리 농업을 이끌어 가는 청년농업인4-H회원 후배 여러분이 나처럼 4-H와 귀한 인연을 맺게 됨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다.
아울러, 4-H활동을 통해 보람을 얻고 행운과 건강을 누리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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