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01 월간 제752호>
[4-H 지도 현장] 4-H에게 길을 묻다!
<류 한 별 주무관>
“4-H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예? 4…, 뭐요?”
다른 직렬의 직원과의 대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나마 “봉사단체 아니에요?”는 다행인 편이다. 어디서 들어보기는 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와 4-H의 첫 만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인사이동 관계로 들떠있다 사무실이 안정을 찾아갈 무렵 갑작스런 때늦은 업무분장이 있었고, 이후 맡게 된 4-H.
아직 신규직원이라 할 수 있는 내게는 막 알파벳을 뗀 사람이 영어권 학생에게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당혹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황스럽게 시작한 4-H 업무도 2월이 되면 어느덧 1년이 된다.
매월 받아보는 한국4-H신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좥4-H지도현장좦란에 원고 요청이 오면 난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다른 지역의 회원들은 참 많은 행사를 치르는 구나. 우리지역 활동도 신문에 실려야 할 텐데…’ 등등.
지난해 영농회원 참여 행사에 유감스럽게도 혼자 간 적이 있었다. 영농회원을 위한 자리에 담당자만 있는 모습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게 처음이기에 나는 개의치 않고 열심히(?) 참여했다. 알아야 다음에 데려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은이 보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는 농촌의 모습은 우리 지역도 예외는 아니지만 다행히 익산에는 청년 일꾼이 조금 있는 것이 나에게는 큰 희망이었다.
거친 파도가 훌륭한 사공을 만드는 것처럼 지난해의 일들은 2013년의 좋은 양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익산시4-H본부 임원들을 만나면 심심치 않게 젊은 날 활동한 4-H 얘기를 들을 수 있는데, 얘기하는 것이 거의 무용담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옛 이야기를 하는 얼굴 표정에는 하나같이 긍지와 자부심이 묻어나며 지금도 젊은 시절의 활동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한다는 것이다.
과거 1980년대 전후의 농촌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4-H 깃발아래 모였고 단결했으며, 힘들었지만 희망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지·덕·노·체 4-H이념이 삶의 나침반이 되었고, 생활의 중심인 삶을 살았던 까닭일 것이다. 문득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생겼다. 지역에서 기반을 잡아 살고 있는 선배들에게 묻는 4-H와 지금의 청년회원에게서 들을 수 있는 4-H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어쩌면 공동체의식이 높았던 그 때와 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지금이 4-H활동에서 어떤 차이로 나타날 것인가가 조금 더 명확한 궁금증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변했지만 4-H활동은 공동체와 개인 활동 모두를 아우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각종 체험활동, 야영대회에서는 농심을 함양하고 자립심을 기를 수 있으며 과제활동을 통해서는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또한, 지도력 배양교육과 경진대회에서는 회의진행능력과 협동심을 배울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을 정리하면 결국 지·덕·노·체 4-H이념에 귀결되게 된다.
청년들이여, 다시 4-H에게 길을 물어라. 4-H가 과거 선배들의 나침반이 되었듯, 방황하고 아프기만 한 청춘 말고, 아프지만 이겨내는 청춘을, 힘든 오늘을 사는 청춘 말고 내일을 꿈꾸는 청춘을 만들어라.
4-H담당자로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처음의 걱정은 고민을 낳았고, 그 고민은 지금 숙제가 되었다. 청년들이 내일의 희망을 그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인 것이다. 숙제를 하자. 우리 청년들이 4-H를 통해서 미래세대의 잠재적 일꾼이 되기를, 사회를 구성하는 건전한 시민으로 자라 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익산시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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