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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1 월간 제75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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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사이야기] 힐링의 시작과 끝, 그 이름 4-H |
김 덕 혜 인천 신현고등학교
6, 70년대를 서울에서 자란 나는 우리 집이 농사는 짓지 않았지만 당시 서울은 공장과 시장과 논과 밭이 공존하던 곳이었다.
수도 서울이어도 봄이 오면 연기를 내뿜는 도시 한 켠에서는 무논에 모내기를 하고 여름이면 맹꽁이가 우는 냇물에서 미꾸라지 잡고 하얀 박꽃과 은하수가 흐르던 곳이었다.
가을이면 따사로운 볕에서 허수아비와 함께 메뚜기를 잡고 붉은 수수밭 옆 콩밭에서 콩서리를 하던 구수한 향기는 풀을 먹인 이불 홑청의 하얀 내음이 되고 깊은 밤 홍두깨 소리가 자장가가 되던 요람이었다.
그러나 꿈같은 유년기의 자연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 회색 콘크리트 거대한 비석들의 횡포에 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은 우리에게 서서히 각종 성인병과 알 수 없는 현대병에 시달리게 만들었고, 나 또한 도시에 대한 욕망 때문에 병이 들어 몇 년을 고생했는데, 인천의 갯벌과 계양산, 그리고 학교의 텃밭이 나를 살렸다.
이후 십여 년을 마음을 비우고 자연에 내 몸을 맡기던 중, 학교4-H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인천 역시 산업화, 도시화라는 역사의 주요 무대로 공장이 많고 아파트가 많은 오래된 도시이다.
학창시절 4-H운동과 지·덕·노·체 정신은 학교 시험지에서만 풀어보던 것 뿐이었는데 ‘과연 대도시에서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꿈같은 유년기의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복원하고 싶은 의욕이 더 강해서 도시 학생들에게 자연을 접하고 생명을 키우는 작업을 위한 구상과 실천을 통하여 올해는 제14회 한국4-H대상 특별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우선 인천의 역사적 흐름을 알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인천이라는 도시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알기 위해 지방문화재와 자연탐방 활동과 다문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제빵 봉사활동을 꾸준히 실천하였다.
또한 농사라는 단체과제활동을 하면서도 학생 개인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개별 활동을 부여하였다.
농사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매일 의자에만 앉아 있어 체력이 저하되는 인문계 여고생들에게 자연의 품에 안겨 땀을 흘리는 활동을 통하여 면역력을 높이는 자연 치유 활동이다.
다행히 동아리활동을 전일제로 실시하게 되어 항상 배를 타고 인천시 옹진군의 장봉도로 향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인문계 여자고등학교라 진로 진학에 대해 예민한 학생들에게 모든 활동은 진학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우리 4-H동아리는 학년초에 2학년들이 신입생을 모집하여 치열한 면접으로 선발하고 연간 활동 계획을 의논한다.
농사체험활동을 할 때는 학생들 개개인의 진학 계열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된 학습지를 준다.
이과학생에게는 원리 이해와 관찰 활동을, 문과학생에게는 시나 수필을 작성하게 하고, 미술 관련 학생에게는 동아리 상징 캐릭터를 그리게 하고, 요리사가 꿈인 학생에게는 전체 학생을 위한 요리를 계발하게 하고, 방송인이 꿈인 학생에게는 기사문 작성이나 영상물 제작활동을 부여하고, 때로는 모두 토론을 하게 한다.
학생4-H회원 모두가 농업인이 될 수는 없지만 청소년기의 지·덕·노·체를 바탕으로 한 4-H활동은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생명을 사랑하고 가꿀 줄 알고 자연을 품는 가장 자연스러운 세계인이 될 것이다.
학교 신설 5년차, 우리들의 활동이 인천 서구의 도시 환경에 오염된 인간을 자연의 힘으로 치유하는 도시 4-H활동의 아름다운 전형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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