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1 월간 제746호>
[지도자 소감문] 캄보디아에 심은 4-H 정신

이 종 민 〈아시아4-H네트워크컨퍼런스 행사협력추진위원〉

캄보디아 어린이들과 함께 한 이종민 지도자.
캄보디아 봉사활동 제안을 받고 흔쾌히 참여를 결정했다. 우리나라에도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전쟁 후 정말 힘들었던 시절, 우리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현재에 이를 수 있었기에 나는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가서 봉사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날, 한국과 2시간의 시차가 나는 캄보디아에 밤에 도착해 숙소를 배정받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에서 함께 간 사람들은, 한국4-H본부의 청년 4-H해외봉사활동 단원 16명과 한국4-H본부 사무총장과 나를 포함한 지도자2명 이렇게 총 18명이었다.
이번 해외 봉사 활동의 공식 타이틀은 ‘청년4-H 해외봉사활동’ 이며, 기간은 지난 7월 5일부터 12일로까지 6박7일간의 일정이었다. 주요 일정은 캄보디아 UBB(University of Battambang, 이하 UBB)4-H 창립식 참여와 현지에서 추천한 뿌아용 마을 봉사활동 및 친선활동, 문화탐방으로 되어 있었다.

낙후됐지만 가능성의 나라 캄보디아

다음날 아침 일찍, UBB가 있는 바탐방으로 갔다. 대학이 위치한 곳의 전경은 매우 정감이 가고 푸근한 이미지였다. 대학에 들어서자 계단 위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우리 일행을 환영해 주는 현수막과 UBB 4-H 창립 축하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UBB의 소회의장으로 간 우리는 한국 청년4-H가 미리 준비해 간 현수막을 달고 자리를 정돈하고 앉아 상호간 인사 및 소개를 한 후 회의를 진행했다.
미팅이 끝난 뒤 다 같이 학교 앞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한 우리는, UBB의 부총장님과 어느 노교수님의 안내로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학교 연구실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연구실에서는 벼 품종, 꽃 품종 등의 우수종자를 실험하고 있었는데 플라스크 속의 파릇 파릇한 새싹들이 마치 캄보디아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좋았다.
UBB에서는 생수 가공 처리공장을 운영하면서 그 수입으로 장학금도 주고, 식수도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뿌아용 마을로 이동했다.
마을로 이동하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넓은 평야와 논이었다. 산이 없었다. 도로 양쪽에는 오토바이가 오가고 있었고 버스가 달리는 도로에는 중앙선이 없었다.
40여 분이 지나 드디어 뿌아용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는 아치로 되어 있는 구조물이 있었다. 아치로 된 문 안으로 들어서자 길 양쪽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중간 중간 가게라고 하기에는 매우 초라한 가게들이 있었다. 판매하는 상품들은 주로 야채 또는 과자류였다. 마을 가운데 공터에 도착하자 하차 지점에 마을 어르신들과 이장님, 부이장님이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행사 장소에 태극기와 캄보디아 국기, 4-H기를 게양할 수 있는 깃대를 세우고 공터에 천막을 지어 행사 본부와 식당, 배구코트를 만들었다. 한 명, 한 명 주민들이 모여들어 어느 순간 지역민들이 참가자들보다 훨씬 많아졌다. 마을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이동하였다.

캄보디아에 4-H기 게양, 벅찬 감동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다시 뿌아용 마을로 갔다. 전날 천막과 본부 등을 설치해 놓은 곳에 도착해 보니 이미 주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다 같이 국기 게양대 앞에 모여 캄보디아 국가를 부르고, 애국가를 부르고, 4-H노래를 부르며 각각의 깃발을 게양했다. 먼 나라 캄보디아, 그곳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극기와 4-H기가 함께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니 가슴이 뿌듯하고 뭉클했다.
국기 게양을 마치고 팀을 나누어 배구코트를 설치하고, 봉사활동을 위해 가지고 온 물품을 체크하고, 마을의 집들을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전달했다.
또 하루가 흐른 뒤, 우리는 UBB학생들과 4-H회원들이 조를 편성해 80여 가구를 방문했다. 본격적인 봉사활동의 시작으로 마을청소, 잡초제거, 소독 등을 실시하고, 기생충 약을 나눠 주며 한국4-H의 활동을 소개하였다. 오후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체육대회를 했다. 마을과 대학, 고등학교, 4-H 총 4개 팀을 구성하여 대진표를 짜서 경기를 했다.
배구 경기가 끝난 뒤 우리는 마을 주민들과의 친선의 밤을 개최하였다. 청년 4-H 봉사단이 준비한 태권도와 케이팝 공연을 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마을주민들과 함께 춤도 추고,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일정이 끝나고 작별인사를 할 때는 약 200여명의 주민이 모여 환송을 해 주는데 뭔가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UBB 4-H 창립식 개최

다음 날은 바탐방으로 돌아와 UBB 강당에서 캄보디아 UBB 4-H 창립식을 하기로 했는데 벌써 강당에는 600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강당 무대에 스크린과 조명이 켜지면서 우리를 환영해 주는 의미로 캄보디아 고유의 춤과 율동을 보여 주었다. 이에 청년4-H 단원들도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우리의 해외 봉사 활동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이번 캄보디아에서의 4-H해외봉사활동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를 주었다. 캄보디아의 아이들은 21세기가 시작되고 12년이나 지난 지금도 흙탕물로 목욕을 하고, 빗물로 빨래를 하고, 그것을 음용수로 쓰고 있다. 말이 집이지 판자를 대충 얽어 만든 원두막에서 아이들이, 그리고 그 가족들이 살고 있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개발국 돕는 한국4-H 자랑스러워

불과 60년 전,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에 대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말 참혹한 삶을 살았다. 어린 아이들은 미군을 보면 달려가 ‘기브 미 초콜릿.’ ‘기브 미 껌.’을 연발했다. 캄보디아의 아이들은 우리를 보며 한 걸음에 달려와 ‘기브 미 원 달라.’ 라고 외쳤다. 그 때, 정말 먹을 것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는 나라였던 한국이 지금은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한국의 핸드폰과 자동차가 해외로 수출되고, 한국의 인기 가수들을 보기 위해 유럽과 남미에서 방문하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다. 김연아, 박지성 등 세계적인 운동 선수들도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참혹한 전쟁의 화마가 모든 것을 빼앗은 후 50년. 우리는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발전의 한 축에서 최선을 다한 한국4-H와 회원들이 더 없이 자랑스러웠다.
뜻 깊은 봉사의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기회를 주신 한국4-H본부와 함께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신 모든 분들, 함께 동참하시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더욱 절실히 응원해 주신 회원 여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또한, 이번 봉사활동을 함께 다녀온 청년4-H회원들이 더욱 훌륭하게 성장해 이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는 인재가 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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