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1 월간 제745호>
2012 핵심4-H지도자 해외연수기 ② 한국과 한국인의 우수성 맛 봐

이 종 무 지도교사 〈울산 홍명고4-H회〉

말레이시아를 뒤로하고 인도네시아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정을 이끌어 준 자카르타행 가루다 비행기는 작지만 단아했다.
공항에서의 첫인상은 인간적이었다. 멀리 떠나온 아들이 마중 나온 아버지와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짓는다. 엄마는 울지 않는데 아버지가 우는 모습이 하나 같이 공통이다. 부정이 모정보다 크다는 것을 실증하는 장면을 인도네시아에서 보게 됐다.
공항에 도착해 바로 농무부로 이동했다. 거리는 체증의 연속이었다. 매연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자카르타 1000만 명의 인구에 매일 1000만 명의 외부 유입이 있어 2000만 명의 인구가 움직인다니 쉽게 이해가 됐다.
2억 3000만 여 명의 인구수로 세계 5위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
인구가 많다 보니 내수시장이 잘 형성이 되고, 더구나 1만 7000여 개의 섬과 부속 해역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자원 때문에 이 나라의 미래가 밝아 보였다.
교민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삼계탕을 먹었다. 이국에서 먹는 삼계탕이란 열대의 기후에 지친 연수단의 신체에 원기를 보충해 줬다. 길거리에서 만난 한 교민은 몇 년 전에 여행 와서 그냥 눌러 앉았다고 한다. 첫인상에‘바로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현재까지 음식점이 성업 중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한류 열풍으로 어디를 가나‘코레아’라는 수식이 붙고 사람들이 순해 보였다. 물론 일부 전자 제품을 빼면 거의 일본 제품이다. 특히 자동차는 일제가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제품의 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은 무궁무진해 보였다.
연수단의 야간활동은 각 조별 과업이다. 말레이시아에 이어 두 번째다. 우선 저녁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현지 식당을 찾았다. 여기 저기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봐도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서 답답했는데, 갑자기 주인이 모든 음식을 각 접시에 담아 식탁에 놓았다. 우리는 그 중에서 필요한 것만 빼고 나머지는 가져가라고 하고 음식을 먹었다. 먼저 손 씻는 물그릇이 들어오고 밥을 담은 쟁반과 각종 반찬이 나왔는데 이것저것 덜어서 먹었다.
손으로 밥을 먹어 보았다. 오른손으로 조물조물 버무려서 먹는 맛이 손끝에서 혀끝으로 전해 왔다. 식당의 현지 손님들은 이방인들인 우리가 그들의 밥 먹는 것을 흉내내는 모습이 궁금한지 계속 쳐다봤다.
뿐짝으로 통하는 도로는 교통체증이 너무 심했다. 도로마저 일방통행으로 바꿔놓고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휴양지로 향한다는 일념하나로 무척 설레였다. 무엇보다 고랭지 채소밭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고, 체증도로 곳곳에 호객행위를 하는 유쾌한 상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랭지는 해발 1200m 정도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나라 교민이 운영하는 농장엔 취나물, 상추, 옥수수, 고구마, 열무 등이 재배돼 우리 강원도 지역쯤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지금은 물량이 딸릴 정도로 성업 중이라고 했다. 비탈을 개간해서 밭을 만들고 현지에 사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모두 손으로 작업을 한다고 하니 정말 채소 한 잎 버리기가 어려웠다.
내려오는 길에 인도네시아의 전통 식사를 체험했다. 대 바구니에 바나나 잎으로 싼 밥과 여러 반찬이 올라왔다. 아름다운 발이 처진 별채에서 손으로 먹는 점심이란 진정한 인도네시아의 맛이었다.
저녁식사는 자카르타의 장관들이 단골손님이라는 유명한 식당에서 했다.
이 나라 고유의 전통 춤과 노래가 곁들여진 식당의 메뉴는 고전적인 코스 요리였다. 그날은 일본 사람들이 주요 손님으로 와서 분위기를 한껏 내려고 하는데, 우리 연수단은 한국노래를 연신 부르며 식당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사로잡아 버렸다.
항상 아침 여섯 시면 눈이 뜨인다. 평생의 습관이다. 숙소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와 샤워하고 짐 정리를 한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역시 도로는 곳곳마다 정체다. 버스는 간단히 갈 수 있는 거리를 빙 돌아간다.
일방통행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경음기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짜증을 내지 않는 습관이 여유가 있어 보였다.
평균 소득은 낮지만 행복지수는 우리보다 높다는 말에 놀랐다.
대통령궁 주변을 돌아 이슬람 사원에 도착했다.
세계 세 번째이며, 아시아 최대 크기로 기독교인이 설계를 했단다. 신발을 신을 수 없고 반바지는 따로 옷을 덧입어야 했다. 내부는 엄청 넓다. 남녀가 구분된 기도 공간이 메카를 향해 있다.
메카에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 항상 전세계 이슬람인들이 하는 절을 받을 수 있어서.
이윽고 잠시 잊은 한반도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비행기는 아늑했다.
아늑한 비행기 속에서 지난 연수 일정을 회고하며, 가슴 속 깊이 되잡아 봤다. 한국이 정말 살기 좋은 나라이고, 한국인이 정말 위대한 국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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