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01 월간 제742호>
[시 론] 대학4-H연구회 50년사 발간위원회 출범

황 해 룡 (사)농산어촌홍보개발원 상임이사 / 전국대학4-H연구회연합회 제13대 회장

대학4-H연구회 50년사 발간위원회가 출범했다.
1962년 ‘골방에서 광장으로!’ 를 표방하며 세상에 나온 대학4-H가 반세기를 맞아 그 역사를 정리하려고 한다.
비록 시대가 바뀌어 대학4-H 활동의 빛이 바랬지만, 그동안 대학4-H를 거쳐 온 동문들의 활동상을 보면 지금이 최고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학4-H의 역사는 우리나라 4-H운동과 궤를 같이 한다. 마을단위의 4-H클럽(구락부)이 현장에서 지·덕·노·체를 구현하려고 했다면 대학4-H는 캠퍼스 현장에서 지·덕·노·체를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농업, 농촌, 농민문제를 인식하면서 4-H회원들과 더불어 그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농업·농촌문제 깊이 고민

대학4-H가 출범한 1960년대는 농업인구가 전 국민의 60%에 해당하고 식량문제가 심각한 시기였다. 농업, 농촌, 농민문제가 곧 국가문제였던 그 시기에 4-H클럽은 과제이수를 통한 문제해결에 접근했다. 농촌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인 농촌, 농업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현장의 문제를 과제이수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았던 아주 과학적인 접근방식이었다.
4-H회원들은 나이가 어린 청소년이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농촌의 현실은 직시하고 있었다. 배고픔을 느꼈고 농지문제의 불합리를 느꼈고, 농산물가격의 문제를 느꼈다. 농사가 주업인 시대에 농업을 둘러 싼 수많은 불합리한 점들에 어쩔 수 없어하던 4-H회원들에게 대학4-H연구회 회원들은 천군만마와 같은 원군이 되었다. 여름 야영대회에서는 농업문제를 놓고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고 토론의 꽃을 피웠고, 함께 동지의식을 느끼며 한 시대의 아픔을 나누어 가졌다.
대학4-H연구회의 역사는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왔다. 60년대와 70년대의 상황은 농업이 국가의 주력 산업인 입장에서 농업문제에 대한 의식을 공유하면서 함께 고민을 나눈 시대였다. 그리고 80년대들어 4-H클럽은 새마을4-H회로 뜻하지 않은 명칭변경의 수난(?)을 겪었고, 대학4-H회원들은 농촌진흥청 지도사로 역할하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된다.

대학4-H 참뜻 정리

2천년대는 농업의 쇄락과 농촌의 붕괴와 함께 4-H운동도 대학4-H도 거의 빛을 잃어가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시대적 사명을 다 했다는 것인가? 농업인구가 전 인구의 5~7%로 감소되는 아픔 속에서, 농업은 생명산업의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변방에서 고뇌하고 있다.
이렇듯 대학4-H연구회 회원들은 지난 50여년동안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와 함께 자신의 역할을 찾으며 고민하고 번민하면서 각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쌓아 왔다. 대학4-H 초창기 동문들이 이제 70줄 나이에 들어서고 막대들은 30대 중반으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비록 4-H운동은 축소됐으나 대학4-H 회원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학창시절 토론했던 뜻을 사회에서 구현하고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대학4-H 50년사는 바로 이런 회원들의 삶을 역사의 장에 남기려고 한다. 개개인의 삶을 통해 우리 농업사를 조명하면서, 현실 속에서 펼치려고 하는 대학4-H연구회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그동안 소식이 끊긴 회원들이 많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동문들도 많다.
이제 50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함께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지난 세월 아름다웠던 추억을 역사에 담아봤으면 좋겠다. 많은 연락을 (010-3795-0066)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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