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가 연 지도사
2011년 공직생활 시작과 동시에 맡게 된 업무가 4-H였다.
지도사시험 공부를 할 때 책에서 보았던 4-H, 그것이 내가 아는 4-H의 전부였다. ‘처음에는 어떻게 4-H를 운영하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 어떻게 이 많은 행사를 이끌어 나갈까?’ 하는 생각에 고민했던 적도 많다.
여수시4-H회는 영농에 종사하는 회원은 적고, 일반회원과 학생회원들은 많다. 회사를 다니는 회원, 학교를 다니는 회원 등으로 주로 구성되어 시간 내서 활동을 펼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연시총회부터 지도력배양교육, 어린이날 봉사활동, 도 및 시 야영 교육, 도 및 중앙경진대회, 연말총회와 작년에 처음으로 시작한 팜아트 및 농촌봉사 활동 등 한 해 동안 많은 행사를 치렀다.
어렵기만 했던 첫 만남과 달리 그들과 소통하고 함께 배워나가며 이룬 결실이 참으로 많았다.
지난해 6월, 여수시4-H회에서 팜아트를 했다. 기존 계획에도 없었던 행사는 한 여회원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시군4-H회나 농림사업으로 많이 이슈가 되고 있던 팜아트를 우리도 해보 자고 제안서를 가지고 온 것이다.
처음에는 예산도 없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만류했었다. 하지만 학생4-H 회원들에게 농심을 전달하고, 관내에 4-H를 홍보하며 앞으로 다가오는 여수 세계박람회 성공 개최에 여수시4-H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고, 6월 5일 화창한 날 팜아트 포장에 모내기를 했다.
1000㎡의 논에 유색벼를 이용해 4-H와 박람회 홍보 문구를 쓰고, 여름철에 포장 을 함께 관리하면서 10월에 벼를 수확했다.
수확한 쌀은 그 의미를 살려 관내 복지시설에 기부까지 했다. 예산도 없는 행사 를 만들어 4-H를 알리고, 활동을 즐기는 회원들의 모습에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H회원들이 좋은 것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해 실천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던 것이다.
또한 7월에 있었던 시야영교육을 통해 4-H회원들의 열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도야영교육 일정이 갑자기 잡혀 시야영교육 일정을 연기하지 못하고 도야영교육 을 마치자마자 바로 시야영교육에 들어가게 되었다.
도야영교육에서 대형텐트를 치고 2박을 하여 몸이 지칠 법도 한데, 4-H회원은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고 주말에 다시 시야영교육 준비를 하기 위해 화양면 장수학생의 집으로 모였다. 클로버 탑을 만들어 솜을 감고, 야영대회 주무대를 설치했다.
‘무엇이 이들을 지치지 않고 움직이게 하는가?’
회원들은 4-H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피곤함을 잊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 다. ‘회원들에게 있어서 4-H란 무엇인가?’하는 궁금증이 커져갔다.
내가 일년동안 함께한 4-H회원들은 미련해 보일정도로 자기를 희생하며, 4-H 활동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회원들은 4-H를 통해 배우고, 4-H를 알리고, 4-H 안에서 하나가 되어갔다. 그렇게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여수시4-H회원들의 열정이 어느새 내 마음에도 옮겨와 있었다.
영농회원이 줄어들고 학생 및 일반회원이 증가하는 시점에서 4-H는 그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 여수시4-H회는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한미FTA체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농촌에 희망의 등불이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항상 ‘안 된다’는 말밖에 못했지만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준 여수시4-H회원들에게 감사하고 회원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지금도 여수시4-H는 꿈을 꾼다. 그리고 이뤄나갈 것이다. 〈여수시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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