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1 월간 제735호>
[우수학생4-H회원해외연수 소감문] 더 넓은 세상을 배우다

조 혜 진 회원 〈강원 평창고등학교 2학년〉

나는 어렸을 적부터 시골에 살다 보니 작은 울타리에 갇혀 산다는 생각을 해왔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살고 있는 것처럼 여느 또래친구들 모두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더 크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연수의 목적도 그것이었다. 시골에 살다 보니 해외 연수의 기회가 없었다. 4-H활동을 하며 6만 여명의 학생4-H회원 중 우수회원 17명 안에 뽑힌 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번 필리핀 연수를 통해 많은 것을 체험해보고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문화도 느껴보고 세계인이 다름을 알고 싶었다. 또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며 지금껏 내가 봐왔던 것과는 다른 문화, 생활환경, 사회를 배우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연수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깨우쳤고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
처음 서울에 위치한 한국4-H본부에서 사전 교육을 받으며 16명의 친구들과 어색하고 서로 너무 달라서, 4박6일의 필리핀 일정을 어떻게 해나갈까 막막했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해외에선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16명의 학생4-H회원들과 4명의 지도자 선생님들 밖에 없단 생각에 긴장을 풀고 다가갈 수 있었다.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보긴 했지만 국제선은 처음이라 해외를 간다는 것이 떨리고 설레었다.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기 전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마닐라 시내는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몰려 있고 포근한 마을 같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밀집되어 있는 작은 집들 사이사이에 고층빌딩도 많았다. 필리핀은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첫날이라 필리핀에 온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동 중 버스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은 이곳이 필리핀이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잠시 신호를 기다리는 차를 잡고 창문에 매달려 돈을 구걸하는 청년들, 학교를 가야할 나이의 아이들이 관광객만 보면 뛰어와 손을 내밀어 돈을 구걸 하는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한국이라면 해맑게 뛰어 놀고 부모님에게 용돈을 달라고 투정부릴 나이에 돈을 구걸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첫 일정인 아쿠아리움에 들렸을 땐 평소엔 못 보던 열대 물고기들이 있어서 신기했다. 아쿠아리움엔 구경 온 가족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보니 좀 전에 창밖으로 보았던 아이들과 청년들이 생각났다. 필리핀의 빈부격차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필리핀에서의 이튿날 첫 일정은 농업연수원 ATI 방문이었는데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질문을 하며 필리핀 4-H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학생회원이 전체 회원의 90%이상을 차지하는데 필리핀도 거의 같은 비율이라고 했다. 이유는 필리핀 회원들은 대부분 농부이고 학생회원들도 농부의 자식이거나 농부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ATI에서는 농부가 되길 원하지만 학교를 갈 수 없는 형편에 놓인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뜻깊은 일도 하고 있다. 더 나은 농촌 사회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리잘 공원에서 필리핀의 역사가 담긴 벽화와 기념비, 필리핀 국립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필리핀의 역사를 배울 수 있었다. 산티아고 요새에선 한국의 한강같이 강북과 강남을 구분하는 강이 있다는 것이 친근하고 관심이 갔다. 풀숲을 거니는 것은 정말 상쾌했다.
셋째날엔 아침 일찍 마카티 과학고등학교에 갔다. 그들은 우리를 정말 성대하게 맞아 주었다. 환영식을 한 후 영어수업을 들었다. 마카티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수업을 매우 열심히 들어서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용기를 내 서툰 영어 솜씨로 넷둘라라는 14살의 소녀와 대화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처음 원주민과 대화를 하는 것이라 정말 기분이 좋고 내가 대견스러운 순간이었다. 이곳에선 필리핀의 종교적 특성을 알 수 있었는데 교실 칠판마다 가운데에 예수님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가 머문 호텔에도 각 객실마다 성경책이 있는 것이 생각나면서 천주교가 필리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서툰 영어솜씨로 말을 건네는 것처럼 이곳 아이들은 5개월 배운 한국어를 하며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다른 나라에서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을 만난다는 것이 정말 기분 좋았다.
오후가 되고 UN 참전 용사들의 묘지를 보았다.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가까이 가지 못해 아쉬웠다. 수많은 용사들이 희생하여 우리나라가 2차 세계대전때 일본의 통치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기에 그분들께 감사했다. 아직도 푸른 초원에 펼쳐진 그들의 수많은 하얀 십자가가 잊혀지지 않는다.
산토토마스 대학은 정말 깊은 역사를 가진 대학이었다. 400주년을 맞아 학교는 축제분위기였고 그런 오랜 역사를 학생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정문을 통과하면서 원하는 대학의 이름을 외치면 이뤄진단 얘기에 친구들과 직접 해보며 즐거움을 느꼈다.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는다는 것은 한국과 다른 문화였기에 신기했다. 우리 고장엔 대학이 없기 때문에 대학탐방을 해보지 못했는데 내생의 첫 대학탐방이 전통 있는 필리핀 대학이라는 것이 의미있게 남을 것이다.
네 번째 날에는 고속도로와 시골길을 2~3시간 달려 국제미작연구소에 들렸다. 국제미작연구소는 우리나라에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홀대를 받으시며 필리핀에 오셔서 미작 연구소에서 쌀 3가지 품종을 도입해 오셨고 그로인해 우리는 경제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입지에 있는 만큼 보안이 철저했고 생애 한번 갈까 말까한 곳에 간 것이 자랑스러웠고 영광이었다.

필리핀 마카티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은 한국의 4-H회원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후에 갔던 팍상한 폭포는 정말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다. 쪽배를 타고 깊은 곳에 있는 팍상한 폭포의 경관을 보러 급류를 타고 올라갈 때는 기대가 되고 마냥 즐겁기만 했다. 팍상한 폭포수를 맞고 정말 상쾌했다. 폭포수에 그간 피로가 다 쓸려가는 듯 했다. 폭포에서 급류를 타고 내려오면서 왠지 모르게 편안함을 느껴 노래를 절로 흥얼거렸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날, 워터파크에서는 그동안 정이 쌓이고 의지했던 4-H학생 회원들과 즐겁게 마지막을 보냈다.
5일간 4-H회원들과 함께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했고 서로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와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선배들에겐 진심어리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친구들에겐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동생들에겐 부족하지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충고도 해주고 또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년 전의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강원도 평창을 벗어나 필리핀이라는 이름만 들어봤던 나라에서 나는 더 큰 세상을 배웠다. 기대와 걱정 속에 다녀온 나의 첫 해외 연수는 처음에 세운 연수의 목적을 달성하며 정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제5회 전국학생4-H과제경진대회] 참을 수 없는 끼와 열정, 모두 펼쳐라!
다음기사   국제교환훈련 참가 6개국 4-H한마당잔치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