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H통해 청소년 육성하는 지도자로서 자부심 느껴
정 태 석 지도자 (전남 해남 화산중 꽃메4-H회)
평생을 음표와 씨름하며 교단을 지켜온 내가 작년에 처음으로 4-H활동을 시작하면서 떠올린 것은 청소년시절에 읽었던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이었다.
‘내가 과연 4-H활동을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의문을 가졌지만 상록수를 쓴 심훈 선생이 “짝사랑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 진솔한 사랑이야. 이 나라 젊은이들이 순수한 짝사랑으로 나라발전과 인류평화에 이바지하길 바랄 뿐이야”라고 술회한 대목에서 나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 순수한 아이들에게 땀의 진실과 열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일구며 나라와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라고 가르쳐 주고 싶었기 때문에... .
음표대신 꽃밭·텃밭을 일구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또 다른 무엇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을 앞세워 4-H회원을 모집하고, 주말을 반납한 채 회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꽃밭과 텃밭 만들기에 나섰다. 피로감은 다가왔지만 마음만은 무척 즐거웠다.
여기서 깨달은 것은 꽃밭을 만드는 일이든, 밭에 작물을 심는 일이든 때를 놓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 주 한 주 밀쳐둘 수는 없겠다 싶어 고민했던 일들을 곧장 실행에 옮겼다.
텃밭을 만드는 일이 아이들 손만으로는 너무도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봄비가 내리기 이틀 전 서둘러 학교 가까이에 살고 계시는 학부모회장께 전화를 드렸다.
며칠 후에 텃밭에 고추며 고구마, 상추 등등의 작물을 심어야하는데 트랙터 작업을 해 주시면 좋겠다는 청을 드렸다.
마침 학부모회장께서도 텃밭 고르는 일을 위해 트랙터작업을 하는 중이라며 흔쾌히 작업을 해 주셨다. 어찌나 기쁘던지‘농촌인심이라는 것이 이래서 훈훈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것이 예산이겠지만, 소중한 예산이 참으로 보람 있는 일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는 우리 모두에게 노동과 예술에 따른 소중한 흔적을 남기기에 충분한 일일 것이다.
진도의 민요와 남도의 판소리 그리고 문학의 고장 해남에서 풍류가 있는 전통음악을 벗 삼아 밤새 고구마와 삼겹살을 구우며 외국인들과 한국 전통놀이 한마당을 펼쳐 보이고 싶어진다.
자연과 전통문화에서 찾는 가치
요즘 학교에 가면 외국인들이 두어 명 씩은 있다. 학생들이 그들에게 한국의 외교를 할 수 있는 자발성까지도 심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김지하님의 글을 빌자면 ‘풍류(風流)란 모든 살아있는 것, 동식물, 인간, 물질을 접해서, 사랑해서 그 마음을 감동 감화시키고 변화시키는 것. 요즘 문자로 하면 진화시켜 완성시키는 것’이라 한다.
나는 학교4-H회를 통해서 전통문화계승과 농심함양이 어우러진 다양한 활동을 끊임 없이 펼쳐 보이고 싶다.
자연이라는 큰 무대가 있는 해남의 학교4-H회, 그리고 맑고 고운 사람들이 함께하는 “맑은 바람의 띠”를 연출해 보는 것이다.
학교가 자리한 곳이 두륜산 서편자락인지라 일출을 보긴 어렵지만 현산 어느 깊은 산골 마을에서 보면 열 두 산마루를 넘어가는 붉게 타는 저녁노을은 볼 수 있다. 노을은 나에게 이렇게 노래해 주곤 한다.
“그대여!
4-H에서 호흡하고 활동하는 그대여! 그대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
내일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새날을 어떻게 맞이하고 또 어떻게 보내고 싶은 사람인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얻고 조건에 어울리는 사람들 끼리끼리 만나서 부자 되고, 그저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막연한 꿈보다는 오늘 하루 붉게 타는 저녁노을에서 젊음의 피가 샘솟는 메시지를 구하며 4-H 정신을 앞세워 한 걸음씩 노래 부르며 나아가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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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면 구성리 경로당에서 공연하는 화산중 꽃메4-H 회원들. |
4-H회원들은 삼산면 전통음식체험 ‘해남에 다녀왔습니다’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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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운동 대안, 4-H
채 한 학기도 되지 않는 활동 속에서 느낀 것은 4-H운동이 다른 청소년운동들과 달리 자연을 사랑하고 농촌에 애착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직 공부에만 쏠리고 있는 교육현장의 불균형을 바로 잡는 대안교육의 일환이라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머리(Head), 마음(Heart), 손(Hands), 건강(Health)으로 활동하는 4-H운동이야 말로 ‘머리’만 있지 ‘가슴’이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지성과 감성을 조화롭게 길러줄 최고의 활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호미를 잡고 땅을 일구는 일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닌텐도 버튼과 씨름하는 것 보다 훨씬 값지고 아름다운 일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더구나 4-H의 상징인 네잎 클로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행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강한 생명력과 함께 흙을 비옥하게 하는 이로운 들풀이라는 점에서 ‘좋은 것은 더욱 좋게’하는데 ‘음악으로 세상을 바꿔 나가는’ 나의 인생좌우명과도 통(通)한다는 점에서 불끈 힘이 솟는다.
올 한 해 동안 4-H에 대한 다양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진행해 볼 생각이다.
이렇게, 저렇게, 그리고 다양하게 활동하다보면 아이들도 나도 한층 성숙한 회원과 지도자로 성장하리라는 믿음이 오늘도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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