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H통해 청소년 육성하는 지도자로서 자부심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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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한마음대회에서 4-H활동사례 발표를 하고 있는 이성원 지도자. |
이 성 원 지도자 (충남 연기군4-H본부)
1959년 4-H활동을 처음 시작하였으니 올해로 4-H활동 63년째다. 젊은 청년이 이제 노년을 맞았으니, 평생을 4-H와 함께 하였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돌아보면 4-H와 함께한 시간이 보람되었고, 직접 또는 4-H신문을 통해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는 4-H활동을 목격할 때마다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1959년 9월 4일 육군 만기 제대한 후, 당시 내가 거주하던 조치원읍 침산리 후배들을 모아 함께 활동할 것을 권유하여 ‘희망4-H구락부’를 조직하였다.
거리의 천사들 위한 4-H구락부 조직
당시 나는 철도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당시는 8·15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어려운 시기였다. 내가 근무하는 역사 주변에도 구걸로 연명하며 지내는 버려진 아이들이 매우 많았다.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4-H를 통해 그들을 돕고 자활시켜야 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철도공무원을 과감히 사직하고 사재를 털어 버려진 아이들의 안식처인 ‘희망의 집’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숙, 자립, 자활을 위해 ‘희망4-H구락부’를 조직했다. 그간 구걸을 위해 가지고 다니던 깡통을 버리게 하고 4-H과제를 이수하게 하였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일견 생소하게도 느껴지겠지만 당시 희망4-H구락부에서 이수하던 과제들은 구두닦이, 철사공작, 토끼 키우기, 돼지 키우기 등이었다.
버려진 거리의 천사들이었던 희망4-H구락부 회원들은 과제활동을 통해 자립, 자활의 기회를 얻어갔다.
나는 이웃의 모범 4-H구락부인 백관4-H구락부(회장 김시호)와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하여 모범4-H회원들의 모습에 동화될 수 있도록 하는데도 노력했다.
또, 당시 철사수공품 제작에 특기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4-H과제교육으로 철사수공품을 제작하여 각 리, 동 4-H와 학교4-H에 직접 찾아가 전시를 하였고, 제작기법을 전수해 회원들 스스로가 철사수공품을 제작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4-H회원들 모습이 인생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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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지도자가 4-H발전기금 1백만원을 이정우 충남4-H본부 회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
지난 2000년까지 40여 년간 500여명의 희망4-H회원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였다. 희망4-H회원들, 나의 자긍심이 아닐 수 없다.
학교4-H회를 볼 때도 나는 더 없는 자부심을 느낀다.
1967년, 연기군4-H지도위원회를 조직하여 초대위원장이 된 나는 미래의 4-H회원육성은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연기군에 있는 24개 학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4-H이념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매진하였다. 매년 120여명의 회원을 선정하고, 4-H과제물로 토끼 한 쌍 씩을 무료로 제공하여 기르게 하였다. 또, 우수회원에게는 씨돼지를 시상품으로 주었고 그 과제결과가 기대이상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보며 보람과 용기를 얻었다.
4-H활동과 더불어 내 나이 어느덧 일흔다섯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연기군4-H본부 이사와 충남4-H본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4-H지도자로서 4-H교육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전도사가 되고 싶다.
어떤 이는 부(富)로 어떤 이는 명예로 스스로의 인생을 자랑한다. 하지만 나는 보람과 긍지로 내 인생을 자랑하고 싶다.
4-H활동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해 당당한 사회인이 된 4-H회원들이 무엇보다 값진 내 인생의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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