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득 희 (충북 옥천군4-H연합회장)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 일을 도울 겸 농사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연히 농업에 뛰어든 나머지 영농기술과 농법에 대해 문외한이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됐다.
그러던 차에 친한 친구 녀석이 농업기술센터를 소개해 준 것이 내 인생의 전환기가 됐다.
농업기술센터에 4-H회를 담당하는 선생님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면서 4-H회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왜 더 일찍 농사짓는 젊은 청년들이 모이는 단체가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 했는지 스스로 질책할 정도로 농업기술센터와 4-H는 적적한 나의 일상에 활력소가 됐다.
4-H활동을 하면서 선배님들을 통해 새로운 정보습득을 할 수 있었고,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하게 되어 4-H는 내 생활에 일부가 된 것이다.
어느덧 4-H회와 영농에 몸담은 지 5년이 지났다.
처음 시작은 회원으로 시작했지만 해가 갈수록 4-H회에서 필요로 한 임원으로 활동히게 됐고 지금은 옥천군연합회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회장직을 맡고 우선적으로 고민한 것은 어떻게 하면 젊은 영농인들과 4-H회원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현재 젊은 청년들은 농업을 꺼려해 농촌으로 들어와 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농업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노령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영농4-H회원을 확대하고 육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하여 지·덕·노·체의 이념을 재무장하고, 어려운 농업ㆍ농촌 후계인력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450만 4-H인’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정말 4-H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동시에 회원들을 위해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한다.
그동안 4-H이념과 정신이 우리 농업, 농촌을 이끌며 농촌계몽 운동에 앞장선 것은 변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다.
더 나아가 4-H운동이 농촌계몽운동을 뛰어 넘어 개인주의 사고방식이 팽배한 요즘의 현실 속에서 사회적 계몽운동으로 거듭나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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