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보 림 회원 〈경남 의령여자고등학교 1학년〉
초등학생시절에 찾아 온 이후로 몇 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가물가물한 이 곳, 서울.
모처럼 좋은 기회를 얻어 서울에 갈 수 있다는 부푼 마음에 한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2박 3일간 단순히 서울관광을 하는 줄로만 알았던 나는, 그게 아닌 것을 깨닫고 잠시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4-H담당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내가 참가하는 도시문화체험학습이 학교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특별한 과제활동을 선생님들의 도움 없이 수행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날짜는 흐르고 흘러 드디어 우리들 스스로 서울시내를 찾아다닐 7월 21일이 되었다.
먼저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역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에스컬레이터 위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는가. 공장에서 찍어낸 듯 같은 표정을 하고 땅만 바라보며 서 있었다.‘남 일은 신경 안써요’라는 차가운 얼굴이었다.
‘이게 서울인걸까?’ 하는 나의 상경 첫 깨달음. 지하철은 꽤나 복잡하고 어려웠다. 공간 감각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서울 살다가 미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한 것이 별로 없었다. 끈에 매인 풍선마냥 대롱대롱 매달려 다녔을 뿐, 때때로 정신을 팔고 있다가 혹은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사람들을 놓칠 뻔 했었다.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서울,‘의령댁’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공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든 첫 번째 미션장소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 도착했다.
시장은 컸다. 도심 속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왠지 모르게 혼자 들떴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꽤 비협조적이고 불친절한 일부 상인들의 언행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30~40대 아줌마였다면 안 그랬겠지. 정말 말투만 유들유들하지 이곳 사람들도 참 이해타산적이군.
그러던 와중, 친절하고 얼굴에 인자함이 가득한 한 할아버지를 뵈었다. 무척 고마웠다. 시장뿐만 아니라 삭막한 이곳에 이런 사람들이 충만하여 세상을 좀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서울 사람들의 표준어에는 부드러운 억양이 내재되어 있다. 부드러운 말투라서 공손해 보이나, 사투리만큼의 유대감이 없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사투리, 왠지 고향 사람들이 보고 싶어졌다. 서울에서 가게를 갈 때면 사투리를 툭툭 내뱉는 동네 가게에 가고 싶어졌다. 서울 사람들의 말투에는 왠지 모를 거리감이 숨어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락시장의 미션을 마치고 한양대를 갔다. 방학 중인데도 학생들이 꽤나 있었다. 말로만 듣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의 취업 걱정 소리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점심식사 후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서점이라는 교보문고에 갔다. 책이 정말 많았다. 팬시들도 많았다. 또 정신 줄을 놓고 혼자 딴청을 피우다가 우리 조원들에게 폐를 끼쳤다.‘참 나도 짐짝 같은 놈이군’. 온갖 미안함과 수치심에 힐난하며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면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 옆에 살면서 읽고 싶은 책을 한없이 읽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
다음 코스로 이동 중에‘지옥철’을 탔다. 말로만 듣던 인구 폭발. 이 빽빽하게 모인 인구의 10분의 1만 의령에 때어놓으면 의령도 꽤 번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그냥 이곳은 뭐든지 많다. 너무 많아서 벅찰 정도로.
마지막 조별 미션 장소는 서울에 와서 두 번째로 흙내를 맡을 수 있었던 북촌한옥마을이다. 이곳은 예전부터 와보고 싶은 곳이어서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가게 됐다. 부드러운 처마에 작열하는 태양빛. 한국의 전통을 간직한 고풍스런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중히 보존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저녁식사를 하고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했다. 배우들의 혼신을 다하는 연기에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연극을 보며 하루 종일 미션 수행을 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가 싹 가시는듯 했다.
소감문을 쓰는 이 시간을 끝으로 2박3일간‘의령댁’의 좌충우돌 도시문화체험 활동은 마치게 된다.
서울의 좋지 않은 모습들은 남겨두고, 좋은 모습들만 품고 고향으로 내려가 더욱 더 살기 좋은‘의령’을 만드는데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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