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1 월간 제732호>
[시 론] 자연에 대한 예의

이 광 복 (소설가·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종종 단체여행을 할 때가 있다. 문학 관련 심포지엄 참석이나 문학기행에 나설 때에는 자연히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야 한다. 한 분 한 분 소중한 분들과 1박 2일 또는 2박 3일 이상 여행을 하다 보면 진지한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 반면, 실소를 금치 못할 경우도 없지 않다. 예컨대 도회지 출신 인사들과 여행을 하노라면 그 분들이 자연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마련이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소위 유명인사들 중에도 자연을 모르는 분이 부지기수로 많다. 특히 농작물과 잡초조차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언젠가 한번은 충남 보령의 한 휴양림에서 지인들과 하룻밤 묵은 적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었다. 그런데 일행의 대부분은 도회지 출신이었다. 그 분들은 산에 우거져 있는 나무와 풀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휴양림 숙소 앞 공터에는 고추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아마도 관리인이 심심풀이로 고추 몇 포기를 심은 듯했다. 마침 고추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늦게 열린 풋고추는 파란색을 띠고 있었지만, 일찍 열린 고추는 붉게 익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수 한 분이 필자에게 다가와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저게 뭡니까?”
필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다.
“네?”
그러자 그 교수가 재차 물었다.
“저거 마치 고추처럼 생겼는데요.”
“허허허…. 고추처럼 생긴 것이 아니고 저게 바로 고춥니다.”
“그래요?”
그제야 그 교수는 몰랐던 것을 새로 알았다는 듯이 ‘그래요?’의 말꼬리를 치켜 올리며 경이의 눈길로 고추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교수님은 평소 고추를 드시지 않나요?”
“먹지요. 종종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지요.”
“그런데도 고추를 보고 고추를 모르신다니…. 허허허….”
낫 놓고 기역(ㄱ) 자를 모르고 똬리를 놓고 이응(ㅇ) 자를 모른다더니 그 교수야말로 고추를 놓고 고추를 모르는 것이었다.
“사실 저는 고추가 저렇게 열리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뭐가 이상해요?”
“어떤 고추는 파랗고, 어떤 고추는 빨갛고……. 어떻게 한 나무에서 두 가지 고추가 열리는지 이상하지 뭡니까.”
문제의 교수는 한 고춧대에 두 가지 색깔의 크고 작은 고추가 열린 것이 자못 신기한 모양이었다. 필자는 고추가 열려 익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 교수는 잘 이해되지 않는 듯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쯤 해서는 필자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뛰어넘어 충격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그 교수뿐만 아니라 도회지 사람들의 대부분이 대자연의 식물을 잘 모른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도 군데군데 큰 산들이 있다. 도심에서 몇 발자국만 나서면 산을 오를 수 있다. 산에는 무수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지만, 그런 식물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그걸 모를 수밖에 없다.
그건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4-H활동은 회원들에게 우리 농업과 농산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활동이다. 더 나아가 환경과 자연을 사랑하는 심성을 길러주고 있으니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꼭 필요한 운동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필자는 농촌에서 자랐다. 그래서 농사의 소중함, 대자연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석사네 박사네 학벌을 자랑하기 전에 대자연의 소중함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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