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1 월간 제729호>
[나와 4-H] 순결스런 청춘들의 도장

신동일 (아동문학가, 현대아동문학작가회 회장)

대개의 시골 마을이 그렇듯 우리 고향 마을 입구에도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커다란 감나무 그늘을 마당으로 흙벽돌로 지은 4-H회관이 서 있었는데 내 청소년 시절 추억의 상당부분은 그 4-H회관을 중심으로 쌓여졌다.
내가 또래보다 빠른 유초년 시절인 60년대 초부터 4-H구락부(당시 명칭)와 접하게 된 것은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이 새로 조직된 마을 4-H구락부 회장으로 동분서주 열정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런 4-H 클럽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준 분들은 면이나 군4-H 지도자도 있었지만 농촌운동에 관심이 많던 개신교 목회자들의 영향도 컸다고 기억된다. 그 시절 두 세 동리마다 세워지기 시작한 개신교회들은 농촌 운동과 접목시킨 사회활동 열기가 대단했다. 목회 지도자들인 목사와 개신교회 청장년 지도자들이 종교와 결합시킨 활동이 ‘농어촌 잘살기 운동’과 연결시켜 동력을 더했다.
“허물어진 조국 강산 다시 세우려 우리들은 괭이 들고 일어섰노라!” “화려한 꿈은 구름과 같이 헤치고 나의 영육은 흔연히 흙으로 가련다.” 가사에 들어있는 ‘영육’이나 ‘흔연’ 등의 노랫말로 보아 당시의 농촌운동에 심취해 있던 종교 지도자들이 지은 노래가 아닌가 짐작되며 가사에서 전달되는 느낌은 순수하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농촌 청소년들에게 ‘깨달은 자들의 책임감이나 소명의식’ 같은 열정으로 들끓게 했던 것 같다.
형들이 차례로 군에 입대하면서 내게까지 회장 자리가 차례가 왔다. 회장이 되고 보니 학교생활과 맞물려 생각보다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경진대회를 위해 회원들 ‘과제이수’도 독려해야 했고 면이나 군 단위 연합회 같은 대외활동도 참석해야 했지만 그 외 중요했던 일은 마을청소와 마을길 고치기 등이었다. 흙과 솔가지로 엮은 개울다리는 물론 이웃 마을과 연결되는 마차 길을 고르는 것도 4-H회원들의 몫으로 굳어졌다. 그러다 보니 비가 와서 길이 패이거나 겨울철 빙판길이 나면 마을 어른들은 의례히 4-H회장부터 찾게 되었다. 꿈 많던 내 청소년 시절은 4-H운동과 함께 빠르게 지나갔다.
세월은 사람도 환경도 바꾸어 놓았다. 4-H회관에서 목청을 높이던 청소년들은 산업화시대를 맞아 서로 다른 사회로 흩어졌다. 이 글을 쓰며 당시 친구들의 얼굴들을 떠올려보니 그 시절 열심히 4-H활동을 하던 친구들 중 다수가 각종 사회사업이나 달동네 목회자, 지역사회 봉사 등 건강한 사회를 견인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직 어리던 소년시절부터 몸으로 익히고 실천했던 건강한 사고와 행동들이 오늘의 그들을 만든 게 틀림없다. ‘지·덕·노·체’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닦았던 4-H 활동이 성년이 되어서까지 이어지는 건강한 인격 형성의 값진 산실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제 그 시절 청소년들이 산업화 시대와 더불어 썰물처럼 빠져나가 대부분 우리네 농촌 마을에는 대를 이어 4-H운동을 할 청소년들도 사라졌다. 다행한 일은 옛날의 농촌마을 중심의 4-H운동이 요즈음은 청소년 인력이 넉넉한 중소도시는 물론 대도시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다양한 계층의 청소년들이 4-H운동에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교육 이론에 ‘청소년 시절에 형성된 인격이 평생 인격’이 된다고 했다. 농업사회에서 산업화시대를 넘어 지식정보화시대로 사회는 변하지만 건강한 평생 인격을 다듬어주는 청소년들의 4-H운동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를 이뤄나갈 청소년들을 육성하는 소중한 산실로 존재가치를 높여갈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봉사를 바탕으로 한 건강한 삶이 보람있고 행복하다는 것을 청소년시절부터 알려주는 운동! 그것이 4-H클럽이 추구하는 청소년 활동이 아닐까? 그래서 4-H운동은 그 노래 말처럼 ‘순결스런 청춘들의 행운의 도장’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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