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 희 (대한청소년충효단연맹 총재)
4-H운동은 국가의 장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지·덕·노·체 4-H이념을 생활화함으로써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 기여토록 하는 사회교육운동이다.
4-H운동이 다른 청소년운동과 다른 점은, 자연을 사랑하고 우리 농촌에 애착을 갖게 하는 자질을 배양하는데 있다. 따라서 일반 청소년교육이 지육·덕육·체육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비해 4-H운동은 노육을 추가하여 현장교육과 실천과제 등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4-H활동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은 50여 년 전 청소년 시기였다.
‘네잎다리 클로버에’로 시작되는 4-H노래에 도취되어 낮과 밤이 바뀌어 지칠 줄도 모르며 살기 좋은 우리 농촌을 내 손으로 꼭 만들겠노라고 상록수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
여고 1학년 때 과제이수활동 우수 4-H회원으로 선정돼‘요큐사’돼지 한 마리를 상으로 받아 대문 옆 깡통에다‘영희 돼지 키워주세요’라는 글을 붙여 동네 어른들이 돼지를 키워주었고,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친구들에게 분양해 지역농촌의 경제 살림에 미력이나마 기여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전국 4-H회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4-H활동에 매진하여 농촌의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주었고, 주변의 이웃과 친구들의 호응 속에 4-H활동을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영주시농업기술센터에 잠시 머물면서 4-H청소년들에게 과제이수를 통한 농업선진화와 지역의 지도자로 양성시키기 위한 진학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부녀자들에게 가난을 이길 수 있도록 농사일에 참여하면서 무한한 자기개발의 기회를 부여하기도 했다.
단순한 쌀농사에 그치지 않고 과일·채소·화훼를 재배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의 근간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청소년들에게 자기개발을 통한 지도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면서 상록수의 주인공이 되도록 열정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결혼과 동시에 나는 초등학교 교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 1968년도에 충북지역의 법주·이원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4-H회를 구성했는데, 아마도 전국 최초의 초등학교 4-H회를 창립하여 운영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던 시기부터 청소년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남달랐던 나는, 4-H운동을 하면서 청소년기의 나를 지도자로 육성시켰던 정신이며 이념이었던 4-H정신이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을 건전하게 육성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사단법인 대한청소년충효단연맹을 설립했다.
우리 전통의 맥을 이어 온 정신은 충효정신인 것이다. 500여회의 국난을 겪고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 국민이 보여 준 저력은 충효정신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우리의 국민정신인 충효정신을 다듬어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을 올곧고 옹골차게 육성시켜야 할 책무가 우리 어른들에게 있는 것이다.
4-H운동이 우리나라의 경제부흥과 민주시민사회를 열어가는 근간을 마련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우리 대한청소년충효단연맹은 4-H정신을 이어받아 피폐해진 시민사회의 의식을 개혁하고 우리의 청소년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함양해 나갈 수 있도록 수련활동과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지도자 육성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올곧고 옹골차게 육성될 수 있도록 매진하고 있음은 나의 가슴 속에 새겨진 4-H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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