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1 월간 제728호>
<4-H지도자 활동 소감문> 언제나 처음 그날처럼

백 광 현  농촌지도사 〈경기도 여주군농업기술센터〉

처음이라는 말은 언제나 신선하다. 그리고 희망에 넘쳐 보인다.
어제는 여주군4-H지도교사협의회 임원분들과 올해 들어 처음으로 소주를 한잔 했다. 2011년도 학교4-H운영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어서였다. 술자리가 파한 후 오랜만에 함께 노래도 불렀는데 살아생전 선행을 많이 했다던 고(故) 박용하의 ‘처음 그날처럼’을 불렀다. 가사 중 ‘이런 날 용서 해. 바보 같은 날’이라는 대목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지난 일년간 4-H활동을 하다 졸업을 하는 학생4-H회원을 영농4-H회원으로 한명도 붙잡지 못했고 산업기능요원을 복무만료하고 도시로 떠나는 친구를 아무도 4-H일꾼으로 키워내지 못한 자책의 눈물이었다.

 
 
2003년 처음 4-H와 인연 맺어

2003년, 나는 처음 4-H담당 지도사로 4-H와 첫 인연을 맺으며 4-H를 정말 잘해보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처음 4-H야외교육을 하며 장마 빗속에서 봉화식을 준비했었고 봉화불이 타오르고 폭죽이 터질 때 즈음 서편에 달이 얼굴을 내밀었고 내 휴대폰에는 아내로부터 “당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의 메시지가 배달돼 있었다.
4-H를 맡은 지 석 달만의 행사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멋진 행사였다. 그 행사는 성공적인 행사로 언론에 특필되기도 했다.
나는 그날, 앞으로 태어나는 내 아이가 4-H회원이 되겠다고 말할 때까지 열심히 4-H를 위해 일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나는 이것을 감히 ‘초심(初心)’이라 여기며 8년간 일해왔다.

4-H생활 8년, 우리 가족은 모두 4-H인

그동안 가정적으로는 아내가 4-H지도자 회원으로 가입했고, 큰딸은 대학4-H를 조직하고 둘째딸은 학교4-H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때 태어난 늦둥이는 4-H노래를 동요인양 흥얼거린다. 직장에서는 4-H지도공무원들이 대부분인 학습조직전문지도연구회에서 총무와 부회장도 맡아 일했었고, 한국4-H신문 자문위원도 해 보았고 경기도4-H지도연구회 회장을 몇 년째 보고 있기도 하다. 그 외에 TV에도 몇 번 나오기까지 하는 등 나름대로 4-H를 위해 많이 일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바로 이 점이 여주4-H가 더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우리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고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다시 ‘초심’을 되찾는 일이다.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이다. 초심이란 겸손한 마음이고, 순수한 마음이고, 배우는 마음이며 늘 열려 있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2003년 나는 정말 겸손했고, 순수했고, 배우는 심정으로 4-H임원들의 모든 의견을 수렴했고, 4-H지도교사 선생님을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그것이 그날의 영광을 가져왔으리라 여긴다.

가장 지혜로운 삶은 초심자로 사는 것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내가 가장 4-H를 잘 알 것이라는 오만함이 가슴 한 켠에 자리를 잡았고, 4-H업무를 추진하는 데 있어 쉽게 가고 편히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그렇게 된 그 순간부터 4-H발전은 요원했던 것 같다.
가장 지혜로운 삶은 영원한 초심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새해가 밝은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오늘도 수은주는 영하 10도를 넘지만 이제 봄은 아주 가까이에 와 있다. 봄은 모든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희망을 준다. 새로운 초심도 만들어 준다.
처음 그날처럼, 항상 긍정의 마음으로 항상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항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 마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서 일해야겠다.
훗날 정년퇴임을 하게 되는 날 나는 꼭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만이 내가 살아온 이유였다고, 너 없인 나도 없다고, 나의 사랑은 네가 마지막이었다고”, 그리고 “너는 바로 4-H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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