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1 월간 제727호>
<지도교사이야기> 가슴 떨리게 하는 4-H활동

박 경 우 전북 정읍 감곡중학교

아이들이 썰렁 개그라며 내게 묻는다.
세계인의 머리카락을 세어 곱하면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이 물건 살 때는 뭐라고 할까요? 로봇이 좋아하는 음식은?
한참을 생각해도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세대차이일까? 문화차이일까? 사람이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나와 4-H의 관계는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어릴 적 지낸 곳은 사시사철 인삼 썩은(?) 물을 먹고 산다는 운장산 자락의 산골이었다.
가을이면 메뚜기볶음이 최고의 반찬이었고 초가지붕의 눈이 녹아 고드름이 달리는 겨울이면 형님은 토끼를 허리춤에 여러 마리 대롱대롱 달고 들어오곤 했다.
나는 책을 보자기에 둘둘 말아 어깨에 대각선으로 메고 빈 도시락에 수저를 넣어 딸랑거리며 학교에 다녔다. 오전 시간에 받아쓰기를 마치면 점심 때 아저씨가 숙직실 가마솥에서 옥수수 가루를 끓여 빈 도시락에 퍼주었다. 닳아진 수저로 딱딱거리며 긁어 끝까지 핥아먹었던 그것이 국제구호단체에서 준 것임은 나중에 알았다. 여름에는 동네마다 청년들이 보리풀 베어서 쌓으며 경쟁을 벌였고 그들은 모두 4-H활동을 했던 분들이었다.
나는 교사로서 이십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4-H 녹색 깃발만 봐도 가슴이 뛰는 4-H활동가다. 교문을 향해 오르는 언덕은 봄이면 야생화가 잡초와 어울어져 그야말로 전체가 꽃 대궐을 이룬다. 언덕에 이름 모를 꽃이 지천인데 이 마당에 어떤 것이 잡초라고 속으란 말인가? 그래서 꽃말이 있는 것에는 시를 찾아 푯말을 붙여주었다.
지난 여름에는 4-H회원들과 농촌체험활동을 다녀왔다.
전북 남원 지리산자락의 달오름마을에 갔을 때는 삼복더위로 후끈하던 칠월의 끝자락이었다. 반 쪽 바가지에 산채비빔밥을 담아먹고 다슬기 수제비를 만들었으며 보라색 감자도 캤다. 옥수수를 삶아먹으며 해발 500미터 고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초원지대의 상쾌함을 만끽했다. 그 곳은 더 이상 내 어릴 적에 겪었던 구질구질한 시골이 아니었다. 민박도 하고 풀을 이용한 매듭이며 기에 관련 있는 사람끼리 모여 수련도 하고 밤이면 작은 음악회까지 열렸다.
11월에는 이곳 시골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4-H본부에서 운영하는 ‘농촌청소년 도시문화체험학습’에 참가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돈까스로 통일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수하고 순진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이 서울시내의 박물관·대학교·이태원 등을 이동하며 학교현장에서 접하지 못하는 과제학습활동을 흥미진진하게 수행했다.
특히 동숭동에서의 ‘33개의 변주곡’이라는 제목의 연극관람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웅장한 장소와 수준급 공연은 일인다역의 작은 소극장에서의 공연이나 학예발표회에서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베토벤이 살아 움직이고 작곡하며 그 연주를 듣는 듯 완벽했다.
삶의 실존을 묻는 듯한 매우 철학적인 주제임에도 우리 학생들 모두가 피곤으로 몰려오는 눈꺼풀을 비비며 숨죽여 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슴떨림이 좋다.
젊어서는 그런 순간들이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즐기고 싶다. 해외로 첫 나들이할 때 공항에서 느꼈던 것처럼 마음은 늘 청춘이고 싶고 예리한 감각을 되살려 그런 생경함을 경험하고 싶다. 작은 일에 감동하고 호들갑을 떨면서 억지로라도 그리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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