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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4-H본부의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강순후 부회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성실히 해내는 일꾼 중의 일꾼이다.> |
강 순 후 부회장 (전라북도4-H본부)
“4-H운동이 좀더 역동적으로 전개됐으면 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4-H와 관계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4-H활동과 정신을 이야기 합니다. 지금은 현역회원이 아니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 후배회원들을 돕고 싶습니다.”
1976년부터 4-H회가 좋아 선배들을 따라 4-H활동을 펼치며, 4-H에 관련된 모든 교육을 받고, 지금까지 4-H활동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강순후 전라북도4-H본부 부회장(53·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은 4-H에 대한 아쉬움과 사랑을 이 말로 대신했다.
야영대회·교육 등 적극 참여
옛 사진첩을 꺼내들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을 회고하던 강 부회장은 마을 회원들과 모내기 했던 사진, 경진대회와 월례회의 사진, 교육 받을 때 사진 등을 보여주며 그 때 당시의 일들이 현실처럼 다가오는 듯 일일이 설명해줬다.
“1980년 초 완주군4-H야영대회가 완주군 구이에서 개최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대회 중 한 회원이 순식간에 이상한 모습으로 까무러치더라고요. 당시 조덕철 계장님은 괜찮을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런 경험이 없던 저희는 매우 놀라서 전주 병원으로 가자고 우겼지요.” 전주로 수송되던 중 차 안에서 회원이 안정을 되찾아 별 탈 없이 대회가 마무리 될 수 있었단다. “나중에 저희들이 성급히 행동했던 것을 조 계장님께 사과드렸더니, 조 계장님은 도리어 괜찮다며 회원들의 책임감이 돋보인다고 격려해주셨죠.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이렇게 4-H활동을 해왔던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해졌을 뿐더러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는 이유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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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4-H회원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던 모습. 가장 왼쪽이 강순후 부회장.> |
<야영교육에 참가해 직접 음식을 조리하고 있는 강 부회장과 회원들.> |
전북4-H본부 통합 위해 힘써
강 부회장은 지금도 현역4-H회원들처럼 그 활동이 왕성하다. 한국4-H운동이 60주년을 맞이했던 2007년에 강 부회장이 윤주성 전북4-H본부 수석부회장(당시 전북4-H연맹 회장)에게 전북4-H인 한마음대회를 추진해보자며 1억이 넘는 예산을 마련해 가져갔다고 한다. 결국 2007년 7월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2000여명의 전라북도4-H인들이 모여 4-H를 향한 열정과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 부회장의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얼떨떨했었는데, 그 진지한 태도에 한 번 해보자고 했지요. 결국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습니다. 강 부회장의 배짱과 자신감, 추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라며 윤주성 수석부회장은 강 부회장을 평가했다.
강 부회장은 특히 도 본부 관계자들과 함께 14개 시군을 거의 2~3회 순회했을 정도로 전라북도4-H본부 및 시군4-H본부 통합을 위해 애써왔다. 그 결과 전라북도는 타 도에 비해 순조롭게 본부 통합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10동의 하우스(총 1815㎡)에서 느타리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강 부회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4-H회의나 행사가 있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 농장 일을 마치고 회의나 행사에 참석하는 ‘성실맨’이다. 그리고 행사 때마다 집에서 가져온 농산물을 참석자에게 일일이 선물하며 4-H인의 뜨거운 정을 나누고 있다.
강 부회장이 살고 있는 완창마을은 정보화마을로서 마을 홈페이지가 잘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 4-H동호회 게시판을 만들어 전북4-H본부의 활동사진을 업데이트 하는 등 궂은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다른 4-H행사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학생회원의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해 격려를 아끼지 않는 강 부회장은 “전국의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4-H운동을 역동적으로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4-H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강선태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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