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15 격주간 제674호>
<4-H교사 이야기> 지난 10년간의 4-H회 활동

<손 옥 기>

4-H회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그 시절 마을 회관 앞에서 지·덕·노·체의 네잎 클로버가 새겨진 4-H회 깃발과 태극기의 펄럭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 마을 입구에는 ‘현남 마을 4-H회’라고 써 있는 표지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기에 나의 형, 누나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4-H회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나 또한 마을의 학생 4-H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맨 처음 마을에서 4-H활동

그러나 대학교에 진학한 후 이것저것 바쁘다는 이유로 4-H회와는 점점 멀어져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군 복무를 마치고 분당의 중학교에 신규교사로 임용되었다. 5년 후 경기도의 마지막 남은 농업학교인 여주의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로 부임했는데, 그때부터 10년 이상 멀리 한 4-H회와의 인연은 다시 시작되었다.
발령을 받자마자 교감선생님께서는 4-H회 업무를 열심히 해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나에게 4-H지도교사를 맡기셨다. 처음에는 참 막막했다. 그런데 그때 문득 학창 시절 했었던 4-H활동이 생각나면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난감해 하지 않았고, 열정을 쏟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 4-H지도교사로 활동할 때는 학교4-H회만 지도했었으나, 몇 년후에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하기도 했던, 전국에서 제일가는 취타대 담당교사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는 바람에 취타대 담당교사로 전통문화 4-H회를 지도하게 되었다.
여주군 지역과 학내 행사는 연간 8회 정도, 수원시, 문경시, 서울 송파구와 은평구 등 지역 외 행사가 10회 정도 있었다. 4월부터 11월까지 공연을 위해 한달에 최소 2번 이상 출장이 이어졌다. 교환수업과 업무의 과중으로 인해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생들과 동거 동락하면서 누린 많은 즐거움은 다른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었으며, 나는 학생들 속에서 다시 새 힘을 얻곤 했다. 그 즐거움과 힘으로 지금도 4-H지도교사를 담당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교직생활을 마치는 날까지 4-H회와는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내가 4-H활동을 지도하면서 학생들에게 강조한 것은 어떤 기능이나 기술보다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할 인성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꿈과 비전, 무슨 일이든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열성과 열정이다. 학생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질책하기보다는 격려와 위로로 동기 유발을 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나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과 아쉬움을 느낄 때에는 4-H정신인 지·덕·노·체를 되새기며 꾸준히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격려와 도움에 고마움 느껴

돌아보면 내가 4-H지도교사로 10여년 이상을 변함없이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의 격려와 후원 덕분이다. 4-H회와 인연을 맺게 해주신 여주군농업기술센터 소장님과 백광현지도사, 경기도농업기술원장님과 한재수 지도사, 한국4-H본부회장님과 지도교사협의회 박정철 회장, 지도교사협의회 고문이신 김학식 지도교사, 경기도 지도교사협의회 이제승 회장 등 여러 선배와 동료교사, 영농4-H회원들의 지도편달과 열정이 함께 했으므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광주중앙고등학교 그린4-H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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