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01 격주간 제673호>
<4-H교사 이야기> 또 다른 나를 찾아서

<정 선 미>

내가 학교4-H와 인연이 닿아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된 것은 교직 생활에 권태를 느낄 만한 시기에 만나게 된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동안 교직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시골에서만 근무하다가 2007학년도를 시작할 무렵 창원으로 전입해 왔다. 지방 도시치고는 비교적 큰 축에 드는 창원으로 들어오면서 설렘으로 발령을 기다렸는데, 내가 근무하게 된 곳은 마산과 진해가 묘하게 맞물리는 지역으로, 화려한 시내와는 달리 여러 면에서 변두리의 요소를 갖춘 열악한 환경의 학교였다.
한 학년에 4학급, 전교생 3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학교 규모가 적다보니 지원되는 예산으로 학교 환경 가꾸기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 때, 문득 전에 있던 학교의 4-H회가 떠올랐다. 전 학교에서 학교4-H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는데, 학생들에게 유익한 활동들이 많았다. 잘 알고 지내던 선생님에게 자문을 구하고는 관심이 시들기 전에 학교4-H회에 문을 두드렸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창원 지역 학교4-H회 지도교사들로부터의 도움과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으로 내 주변에서부터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봄에는 보잘 것 없는 나무 몇 그루의 메마른 화단에 화사한 봄꽃이 학생들을 반기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가을에는 국화 향기 가득한 학교가 되자 동료 교사들의 눈길도 달라졌다. 학생들도 꽃 가꾸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또한 여름방학에는 탈 만들기와 한지 공예, 오카리나 연주 등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과제활동을 통해 회원들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3차례의 농촌 체험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지난 2월의 체험 활동은 학생들보다 나 자신이 보람을 느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노인복지센터에서의 봉사 활동은 처음이었다. 처음 맞이하는 어르신들의 간식 시간.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간식을 직접 입에 넣어드리기도 하고, 반대로 노인들께서 잡숫던 음식을 먹으라고 주시면 거절하지 말고 먹도록 하세요”라고 하는 담당자의 말이 엄청난 부담으로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학생들 앞에서 머뭇거리며 서 있기도 그렇고 해서 ‘에라 모르겠다. 나도 봉사라는 거 제대로 한번 해보자’란 굳은 마음으로, 평소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최대한 열성을 다해 딱딱하게 굳은 손을 어루만져 드리고,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노래도 한 곡 불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을 흘리시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할아버지의 눈빛이 선하다. 어색해 하던 몇몇 학생들도 자신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는 것 같다며 정성을 다했다. 남을 위하는 이런 마음이라면 우리 학생들은 그 어떤 사회 문제에도 흔들림 없는 건강한 청소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지난 해 처음으로 시작한 양곡중학교4-H회도 앞으로 뭔가를 보여 줄 수 있는 동아리로 자리매김해야겠다는 야무진 다짐을 한다. 경험이 많지 않아 힘든 일도 있겠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1인 1기능을 지닌 4-H회원’을 올해의 목표로 삼았다.
2008학년도 신학기 접어들면서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4-H회원 모집’이란 공고가 나자마자 학생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큰소리치며 4-H회원 자격 요건을 내세워 선발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어깨가 무겁다. 보고 있는 시선들도 많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경남 창원 양곡중학교4-H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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