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5 격주간 제921호>
[이달의착한나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사람

- 남한산성 -

코로나19가 확산될수록 무서운 건 사람이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만 갇혀 지내다 하도 답답해 남한산성엘 갔다. 마스크를 쓰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스크 안 한 아저씨가 있었다. 나는 돌아서 숨을 참다가 얼른 1층에 내려 숨을 몰아쉬었다. 거리는 한산했고 토요일인데도 5호선 마천행 전철은 썰렁하기만 했다.
요즘은 식당 사람들조차 믿을 수가 없어 김밥을 사가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남한산성은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가 47일간 벌어졌던 곳이다. 청나라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인조와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해든다.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로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당시 이곳은 고립무원의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인조는 청나라에 항복을 한다. 인생이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라면 지금 우리는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전쟁 중인 것이다.
남한산성 성곽길을 걷다 암문을 만났다. 암문은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성벽에 뻥 뚫린 숨구멍 같았다. 그것은 비밀통로로서 유사시 병기나 식량 등을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구원요청이나 역습을 하는 통로다. 전쟁 땐 암문이 사람을 살리는 문이었던 것이다. 남한산성엔 16개의 암문이 있어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준다. 우리 주변에도 암문 같은 사람이 있다.
전남 완도의 작은 섬 ‘청산도’엔 ‘청산도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강안 원장이 있다. 이분은 서울서 성공한 의사였는데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섬으로 간다. 주민들은 늙고 병든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한 달에 70~80명은 무료로 치료를 해준다고 한다. 그러니 원장님 수중엔 돈이 모일리가 없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병원을 찾는 할머니들로 붐비는 병원. 잠 없는 노인들이 눈만 뜨면 병원으로 와 커피나 율무차를 마시며 7시 반에 출근하는 원장을 기다린다. 때론 출출할까봐 빵도 사서 나눠준다 하니 병원이 동네 사랑방이다. 주말이면 84세의 몸을 이끌고 누워있는 환자를 찾아다니는 의사. 진료할 사람이 있어서 감사하고 기쁘다는 사람. 그는 이 섬에서 15년을 살았고 죽을 때까지 살 것이라고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가난해 치료조차 받을 수 없는 섬사람들을 섬기면서.
그의 친구들은 말한다. 나이가 여든넷이면 빌딩에서 세나 받고 편히 살아야지 하루에 130명씩이나 진료를 하다니 고되지 않느냐고. 그러나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아니야 나는 즐거워. 빌딩보다 봉사가 좋아.” 남들은 그를 바보 의사라 부르지만 그의 환한 웃음을 보면 그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깨닫고 성취했음이 분명하다.
나는 나 하나 건강하고 가족이 무사하기만 바랐다. 외출을 못 해 살찌는 것을 걱정했고 최대한 사람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그러나 많은 의료진들이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고 아픈 사람 곁으로 달려가고 있다. 격리되어 목숨을 걸기도 하면서.
나는 암문을 지나며 슈바이처 박사의 유언을 떠올렸다. 그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 “나는 여러분의 운명을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섬김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구하여 깨달은 사람일 것입니다.”
김금래 / 시인

암문은 거대한 성벽의 숨구멍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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