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1 격주간 제914호>
[시 론] 농업 패러다임의 전환과 공익형 직불제 도입
임 정 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 한국4-H본부 부설 농촌·청소년문화연구소장)

어느 국가에서나 농업은 여타 산업부문과 다른 농업 특유의 다양한 비시장적 공익가치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대폭적인 무역자유화나 시장개방이 어려운 분야이다. 농업분야가 모든 국가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민감하게 인식되는지는 2001년 시작된 WTO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거의 20년 가까이 표류하다 좌초된 핵심 원인이 바로 농업분야라는 측면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모든 국가에 있어 농업은 국민에게 필요한 식량공급이라는 본원적 기능 이외에 토양보전 및 수자원함양, 환경 및 생태의 보전, 경관 및 문화의 보전, 농촌사회의 유지 및 국토의 균형발전 등 다양한 형태의 공익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EU, 스위스, 일본 등 일부 선진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아직도 농업이 발휘하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과 가치의 중요성이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무엇보다 선진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아직도 국민들이 먹고 사는 기초적 생존문제 해결이 중요하기 때문에 농업을 단지 식량을 공급하는 부문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농업생산 활동이 국민에게 식량공급이라는 고유의 기능 이외에 부수적으로 다양한 공익적 기능과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해 왔고,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농업이 창출하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과 가치는 경쟁논리에 입각한 농산물 무역자유화로 급격히 상실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리와 같이 식량순수입국의 경우 국내 농업생산 활동의 위축은 지금까지 우리 농업과 농촌사회의 유지를 통해 수행되어 온 홍수조절, 지하수 함양, 대기정화 및 환경보호, 식량안보 및 식품안전, 전통문화보전, 생물다양성 유지, 국토의 균형발전을 통한 사회 및 정치안정 등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감소시킬 것이다. 실제 우리가 아무런 대비책 마련도 없이 농업부문이 축소되고 농촌사회가 붕괴된다면 농업활동과 농촌사회의 유지로 인해 창출되는 많은 사회적 순기능이 없어질 것이며, 향후 이러한 다양한 공익적 기능과 가치를 되찾기 위해 사회 및 경제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우리 농업이 발휘하는 공익적 기능에 대한 적절한 가치 평가 작업과 함께 농업이 창출하는 공익적 기능과 가치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EU, 스위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농업생산 활동으로 창출되는 토양, 수자원 등 환경보전, 생물다양성 유지, 경관 및 문화보전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공익형 농업직불제’라는 명목으로 농업에 대한 직접지원을 확대 및 강화해 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렇게 선진국을 중심으로 공익형 농업직불제가 농정의 주요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러한 공익형 농업직불제가 농가에 대한 소득지지 또는 경영안정에도 기여하면서 동시에 토양, 수질, 대기의 질 개선, 농촌경관 형성 및 전통문화보전, 지역농업과 농촌경제의 활력 회복 등 다양한 공익적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농업직불제가 농가소득을 보전하는 정책수단으로 작동하는 동시에 농업·농촌이 발휘하는 공익적 기능 확산에 이바지하도록 합리적 개편이 필요하다.
다행히 2019년 9월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현행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을 전면 개정하여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로 변경하고, 공익형 직불 농정으로의 전환을 공식화한 것은 높게 평가된다. 현행 쌀 중심의 직불제를 논·밭 구분 없이 통합하고, 공익형으로 개편하여 농가의 소득안정과 농업의 공익적 기능 확산을 도모한다는 것이 핵심 골자이다. 현행 쌀 중심·대농 편중의 농업직불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국민들이 바라는 농업과 농촌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도록 농업직불제를 공익형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사실 공익형 직불제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국민적 요구 증대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고, 국민과 함께하는 선진 농정으로의 전환을 위한 대표적 정책수단이다. 지속가능한 농업발전을 위한 토대가 되는 농정수단의 선진화 차원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미래의 농업과 농촌을 만들기 위한 농정목표 달성 차원에서도 공익형 직불제 중심으로 농정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다음기사   [기고문] 故 조노제 인형 영전에 삼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