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스님은 깊은 산사의 맑은 바람소리와 들꽃 향기를 바랑에 얹고 집에 불쑥 나타셨다.
" 스님 연락이라도 하고 오시지요"?
두 손을 모아 인사를 드린 후 방으로 모셔들이자 스님은 곧 회색 바랑을 여시더니 둘둘말린 한지 뭉치를 꺼내셨다.
" 스님 그것이 무엇입니까?", 돈이나 한 뭉치 주고가시려 다니러 오셨는지요?"
스님은 집에 오실때마다 무엇인가를 챙겨오셨다
" 허허 그렇게 돈을 밝혀서야 쓰는가 그러니 이집 드나들기가 수월할꼬.. 마음이 천근만근일세?"
스님은 우렁찬 목소리로 한바탕 웃으시더니 둘둘 말아온 한지를 펼쳐 보이신다. 달마도였다.
" 어이구 스님 그것 달마도 아닌지요? 스님께서 직접 그리셨나요? 아이구 스님 그것 값도 꽤 나가겠는데요?"
" 어이구 자네 벌써부터 돈을 말하네 그려? 그렇게 속세에 얽메이고 돈을 밝히면 쓰나? 이것이나 거둬들이게?"
"아이구 스님 그냥 가져가셔서 다른 좋은 일에 쓰십시요
저희 집엔 스님의 그림을 걸어 놓을 만한 공간도 없거니와 그런 귀한 작픔을 가지고 있으면 불안해서 잠도 오질 않습니다. 농부인 제가 잠이라도 편히 자게 해 주십시요"?
녹차 한잔을 앞에두고 주거니 받거니 한참을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결국 스님은 회색 바랑에 도로 집어 넣으시고 표표히 떠나가셨다.
그뒤 얼마지나지 않아 스님이 부처님 곁으로 떠나셨다는 말을 전해듣고 무지 울었다.
스님은 어린 나에게 그 달마도를 주고 싶으셨던 것일까?
아니면 무엇을 전하기 위해 오셨던 것일까?
4년전 어느 이름도 없는 고즈넉한 산사에서
저녁 나절 늦은시간 들어갔던 산사의 아름다운 풍경이며
길손을 위해 아랫목에 불 지펴 주시고
따스한 밥상 차려 주시던 스님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오늘 낯선 스님 한분이 동네에서도 한참 떨어진 우리집까지
올라오셔서 부처님께 드릴 공양미를 시주하라 하셨다.
주섬주섬 쌀 한 바가지를 뚝 떠서 회색 바랑에 너어드렸더니 그 스님께서 달마도를 주시러 애쓰셨던 스님께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부러 찾아오셨단다.
아무것도 아닌 날 기억해 주신 스님과 그 스님의 부탁을 받고 찾아와 주신 낯선 스님에게서 풋풋한 겨울의 야린 풀꽃 향기가 났다.
그 스님 내게 하신 말씀이
" 빈 칸을 넓히며 사시라 전해달라 하시더이다" 였다
그 말씀이 무엇일까? 아직 스물 다섯인 내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말씀이다. 빈 칸을 넓히며 살라?
무슨 뜻인지 좀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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