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농촌지도직 이대론 안된다 /2001년09월10일자/
지난 1997년 농촌지도직 공무원들이 지방직으로 전환될 때 적어도 지금처럼 한심한 일들이 벌어지리라고 생각지는 못했다. 물론 지방직 전환의 논의 과정에서 농업쪽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지방화시대를 맞아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대세를 많은 사람들이 인정을 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통제의 틀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성을 살린 영농지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로부터 4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은 이같은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오토바이를 타고 논두렁밭두렁을 누비며 농민들의 영농을 지도해야 할 지도사들이 세금고지서를 들고 체납 세금을 받으러 다니는 이 기막힌 현상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금징수 정도가 아니라 요즘엔 거리 노점상을 단속하는 일에도 동원이 된다. 휴가철에는 해수욕장과 유원지 관리요원으로 차출을 하는 시·군도 적지 않다. 불법주차 차량에 딱지를 떼는 일은 이제 지도직 공무원들의 전담업무처럼 됐다. 지역축제 같은 일손이 많이 필요한 행사장에서 접의자를 나르고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는 곳도 시·군농업기술센터 몫이다. 지도직 공무원들이 무슨 슈퍼맨이라도 되는가. 온갖 잡일은 잡일대로 하고 본업인 현장 영농지도 업무도 차질없이 하라고 다그치니 어디 될 법이나 한 일인가.
구조조정을 하라고 하니까 우선적으로 힘없는 지도공무원을 잘라내고 아예 시·군농업기술센터를 폐쇄한 곳만도 13곳이나 된다. 그러니 사명감이니 뭐니 하는 말들은 이들의 입장에선 공허한 말 장난에 불과하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시장·군수의 눈밖에 나면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지도공무원들로서는 진흥청의 업무지시를 뒷전으로 미룰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않아도 상식을 벗어난 파행인사로 물의를 빚고 있는 시·군도 상당수에 이른다. 통상 5년 이상의 경력을 필요로 하는 시·군농업기술센터 소장에 지도관 승진과 동시에 보직을 받은 사례도 있다. 큰 잘못이 없는데도 군수 선거에 적극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보직에서 밀려나 젊음을 바쳐 일해온 공직생활을 청산한 센터소장도 있다.
업무는 본청에서 지시하고 인사권은 시장·군수가 갖고 있는 불합리한 조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사권 남용의 묵인과 본말이 전도된 파행적 업무수행은 농촌지도사업을 공백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요즘 농민들은 '지도사 보기가 대통령 만나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지도공무원 10명중 9명은 행정 잡일을 하다보니 지도사업에 전념할 수 없다고 호소를 한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62%의 농민들이 지도업무가 예전보다 약화되었다고 했는데 이대로 가다간 그나마 아예 없어질 판이다. 보다 못한 농림부와 농진청이 지도직 공무원의 국가직 환원을 추진하자 시장·군수가 일제히 반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술 더 떠 시·도지사들은 도농업기술원장의 인사권마저 내놓으라고 한다니 기가 찰 일이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행자부 등 중앙정부가 시장·군수의 반발을 의식해 눈치나 보며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된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면 정부의 신뢰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오덕화<농민신문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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